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우 Apr 05. 2022

#12 검사 결과

양호


 조영제 넣고 MRI, CT 찍는 일은 이제 익숙해졌다. 좁다랗고 길쭉한 통 안에 온 몸이 묶인 상태에서 몇십 분을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에서 버텨야 한다. 귀마개를 해도 쿵쾅대는 소리는 크게 들려왔다. 통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눈을 뜨면 안 된다. 눈 바로 앞이 기계로 막혀있기 때문에 그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폐소 공포증이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러 번 해보니 요령이 생겼다. 이런 검사에 익숙해지기 싫지만 자주 해보니 처음보다는 할 만했다.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듣는 날. 방사선 종양학과 의사 선생님은 무심히 말했다.


"추가로 전이된 곳은 없네요. 흉추랑 요추에 있는 것도 커지지 않고 그대로 있네요"

"방사선 치료했는데 암세포가 줄어들진 않았나요?"

"이 정도면 치료가 잘 된 거예요"


 방사선 종양학과 의사 선생님은 항상 불친절했다. 속시원히 현상태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고, 자세히 물어보면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투로 답했다. 그래서 이 의사샘을 만날 때마다 내 기분은 항상 다운되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혹시나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청 걱정했었는데, 일단 추가 전이를 막은 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곧 있으면 방사성 요오드 치료 2차 준비도 해야 한다. 세 번째 입원. 이번 입원이 마지막이어야 할 텐데...




 검사 결과를 들은 여자친구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누구보다 내 건강 걱정을 하는 그녀였다. 항상 '건강해야 돼'라고 말하는 여자친구의 말이 어느 순간부터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는 끝이 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즈음은 동거를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우리가 너무 섣불리 살림을 합친 게 아닌가 하고 종종 후회를 하곤 했다. 동거 전에도 내 집에서 거의 같이 살았기 때문에 동거 생활도 그리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냥 내 집에 여친이 놀러 온 것과 동거를 하며 같이 사는 것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자친구는 그동안 남자친구가 떠받들어주는 연애를 해왔다. 웬만한 일들은 남자가 다 해주었고, 공주님처럼 대접받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면 나는 그동안 같은 업종에 있는 여자, 즉 영화나 음악, 문화예술 쪽 일을 하는 여성만 만났었는데, 그런 여성들은 대부분 진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남성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었다. (물론 이쪽 업계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맞춰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집안일은 7대 3 정도로 내가 해야 했다. '이걸 왜 나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 여자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면 결론은 항상 이렇게 났다. 너는 암환자고 백수인데, 내가 만나주고 있지 않느냐.


 여자친구의 이런 태도는 나의 자존감을 점점 갉아먹어갔다. 나는 여친에게 짜증을 내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작가의 이전글 #11 동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