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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Sep 28. 2022

#16 불안

이별


 우리 사이는 마치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 느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바로 그런 상황. 여자친구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그 트라우마는 불안장애 증상을 불러왔다. 그 문제 때문에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불안해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그런 자신을 챙겨줄 수 있는 안정된 남자를 만나왔다. 나는 안정된 남자가 아니었다. 불안정의 끝판왕인 프리랜서. 그것도 미래가 불투명한.


 이 문제 때문에 애초에 연애를 시작했을 때부터 매번 부딪쳤지만, 내가 암이 걸리고 난 이후에는 잠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을 잠시 유보한 것일 뿐이었다. 몸 상태가 나아지고 아버지의 재정지원이 끊기자, 여자친구는 결혼 문제를 다시 꺼냈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거야?"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여자친구의 걱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내 여동생이 백수인 암환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나부터도 말릴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은 서운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본인 연봉은 7천이 넘어가는데, 왜 내 연봉에 집착하는 걸까? 나는 여자친구의 연봉이 3천이든 1억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래 봐야 본인 연봉이고 그 연봉에 손 벌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분간은 똑같이 생활비 내면서, 나중에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내 돈으로 생활하자고 할 셈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못 믿는 거지? 그냥 믿어주면 안 되는 건가? 20년 가까이 꿈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멈추는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코로나고 나발이고, 영화판이 힘들어지든 말든... 어쨌든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여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항상 철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일 친한 고향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교사 부부인데, 리조트를 각자 신청했는데 둘 다 돼서 방이 하나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우리 커플 보고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기분 전환도 좀 할 겸 1박 2일로 쉬었다 오자고 했다. 여자친구도 그 커플과 같이 몇 번 논 적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산 중턱에 만들어놓은 리조트는 꽤나 깔끔했다. 암환자들도 많이들 와서 쉬고 간다고 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여유로운 산책을 마치고 난 뒤, 친구 방에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술을 끊었으니 물만 마셨지만, 여자친구는 친구 커플과 함께 와인을 마셨다. 문제는 친구 커플들이 주당이었다는 점이다. 여자친구는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술을 좋아했다. 나는 그런 여자친구의 술버릇을 항상 못마땅해했다. 여자친구는 친구 커플과 똑같은 속도로 술을 마시다 보니 너무 일찍 취해버렸다. 너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그만 마시고 일어나자고 눈치를 계속 주었지만, 여자친구는 뭔가 할 말이 있다며 나보고 먼저 방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 커플들도 당황했다.


 "많이 취한 것 같아. 그만 일어날까?"


 싫다고 떼를 쓰던 여자친구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오빠랑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나랑은 35년 넘게 친하게 지내온 절친이고, 그 와이프도 나랑 23년 넘게 알던 친한 친구였다. 그 친구들 앞에서 나 때문에 힘들다며 우는 여자친구를 보자,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던 외줄이 그냥 끊어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민망해하는 친구 커플을 남겨두고 인사불성이 된 여자친구를 끌고 내 방으로 데려왔다. 침대에 겨우 눕혔지만, 나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여자친구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그런 나에게 왜 그러냐고 했다.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어제의 그 사건 때문에 나도 생각이 정리됐다.


 "니가 나랑 사는 게 그렇게 힘들다면,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내가 놔줄게. 우리... 그만하자"


 여자친구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전 여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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