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가난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로소 Apr 07. 2021

2. 수치심을 너무 일찍 배운 아이

나의 작고 위태로운 화장실


  

나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통째로 삼킨 그 집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일명 화변기라고 하는 일본식 변기에, 커다란 물통에 물을 담아 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내려야 하는 열악한 화장실이었다. 한 평 남짓한 그 공간에서 나는 늘 무서운 상상을 했다.

  화장실 문이 언제 벌컥 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초록색 페인트 칠을 한 낡은 나무문은 작은 잠금쇠로 잠글  있었다.

  





 누가 술 먹고 발길질이라도 한 건지 곳곳에 부서진 자국까지 있는 문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잠금쇠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저깟 고리는 누군가 문 한 번 쾅치면 휙 풀려버릴 거야."

  "이 허술한 문은 내가 대충 발로 차도 부서져버리겠다."


  볼일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으로 문을 응시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나의 위태로운 화장실. 추운 겨울에는 난로를 틀어 놓았지만, 난로는 물통의 몫이지 사람의 몫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이웃집 이불 속에 숨어든 사람처럼 그 온기의 끄트머리를 잠시 빌려쓸 뿐이었다.

  집에는 남동생을 비롯해서 외삼촌, 친척오빠, 친척동생 등 남자들이 많았다. 집주인 할머니, 큰할머니도 늘 나를 긴장하게 하는 존재였다. 10명이 사는 집에 화장실은 하나. 나는 늘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덜커덕"

  똑똑똑... 조심히 두드려봐도 되련만, 우리 식구들은 기어코 문을 덜컥 열어 보고서야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물러났다. 그때마다 심장은 내려 앉았고 온몸이 작게 떨렸다. 조금만 더 세게 당기면 저 잠금쇠가 풀릴 게 틀림없었으니까.


  그 화장실은 내게 수치심을 알려주었다. 곧 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이 안에서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열망에 가까운 마음이 생겼다. 배변이라는 가장 수치스럽고 취약한 순간이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는 위기감. 그것은 내 정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내 치부는 절대 들켜선 안 된다'는 공포가 내 생각과 행동 구조 전반을 지배했다.






  어려서 무척이나 소심하고 제 의견을 말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큰 소리를 내거나 갖고 싶은 것도 잘 말하지 못했다. 언제나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기분을 맞추기에 바빴다. 오랜 시간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어려서는 엄마와 친척들을,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원하는 틀 대로 살았다. 언제나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어른스럽다는 말.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좋았다.


반면 누군가 나를 비웃거나 조롱할 때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여자아이들을 놀리는 게 자신의 일인양 구는 또래 남자애들과는 늘 부딪혔다. 성적, 외모는 물론 아무 말이나 하면 비하할 때도, 나는 크게 분노해 그들을 때려 눕히곤 했다. 중학생이 되어 남학생들의 덩치가 좀 크고 나서는 힘으로 못 덤비고, 조곤조곤 열 받을 말들을 골라 해서는 상대 학생이 내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생겼다. 남학생에게 뺨을 맞은 기억, 밀쳐져서 책상을 엎을 정도로 나가 떨어진 기억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내 약점에 대해 예민한 만큼, 남의 약점도 잘 찾아내는 게 내 유일한 무기였다.


학생은 제 성적을 누구에게든 공개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데도,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했다. 수업 시간에 영어 읽기를 할 때, 문맥상 ‘살다’라는 뜻을 가진 ‘live’를 ‘라이브’라고 발음해서 친구들에게 웃음을 샀던 기억까지도 아직 가지고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임에도, 수치심을 느끼는 기준치는 점점 더 낮아졌다. 그래서 잘 아는 것이 있어도 조용히 있었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했다. 성적도 어쩜 꼭 맞춘 듯 중간을 유지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하다는 걸, 내가 이렇게 못났다는 걸, 내가 이렇게 서툴다는 걸. 고작 열네 살의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다.


아직도 내 마음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나는 그 화장실 속으로 쏙 숨어버린다. 특히 남자들을 불편해한다. 어릴적에, 그들은 늘 내 화장실 문을 부수려고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성적 상대로 보이지 않는 여자에게는 더 가차 없이 그랬다. 내가 또래보다 통통해서 예쁘지 않아서, 자신들보다 공부를 못해서 그들은 늘 나를 놀렸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남자는 그래야 한다는 사명을 띄기라도 한 것처럼. 친척 형제들, 삼촌들, 남자 어른들은 모두 내게 짖궂었다. 나를 지적하고 또 지적했다. 어쩌면 두 명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불신과 상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자에게 인정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에 아마 내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가장 높아졌던 때일 것이다. 화장실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가장 아늑한 공간이었다. 적어도 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손가락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쁜 소식은, 최근에는 화장실 문 안쪽에 더이상 숨지 않는 순간들이 꽤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worst part> 일지도 모르겠다.

 




Photo by Nathan Wrigh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1-2. 엄마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수정02.0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