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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연 Jan 13. 2021

우체통이 사라진다



우체통이 사라진다.

그리 크지 않은 아파트 단지, 정문과 후문 중간 사잇길에 초등학교 후문이 있어 차량은 다니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있다. 그곳에 있는 빨간 우체통이 사라진다.


우체통은 분명 존재했지만 너무 익숙해져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평소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더욱 눈에 띄는 법이다.

입구가 투명테이프로 막힌 탓에 우체통이 그곳에 있음을 상기했다.


빨간 몸통 위를 덮은 흰 종이 위엔 철거예정이라는 안내글이 쓰여 있었다.

사실 그 우체통이 철거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파트 내 화단 안에 심어져 있는 (정말이다. 화단 안에 심어진 꽃처럼 우체통은 심어져 있다.) 우체통은 동네 주민이 아니고서야 존재를 모르니 이용자도 적고 온라인 메신저의 발달로 오히려 편지를 붙일 때 쓰는 우표가 비싸게 느껴질 정도이니 사람들은 편지를 보낼 일이 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휴대폰을 구매하며 편지는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기억은 이제 아주 희미하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이전 학교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족 외에 인간관계란 학교, 학원 친구들밖에 없는 9살의 세상은 뒤집어졌다.


그때 위로가 되어준 건 편지 한 통이었다. 이사 온 직후 친구의 편지를 시작으로 반년 정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금은 친구의 이름도 편지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우체통을 바라보며 편지가 언제 오나 기다리던 어린 날의 설렘이 기억났다.


이제 나는 기다리는 편지도 사람도 없지만 잠시 잊었던 것일 뿐 추억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우체통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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