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도 배려를 할 줄 안다.
비가 온다. 지겹게 또 온다. 이번엔 바람이 강한 태풍이 제주도를 시작해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역시나 똘이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눈망울을 하고 나를 본다.
'언니... 우리 또 산책 못 가는 거야...?'
똘이가 사람의 언어를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면 참 좋겠지만 물론 눈으로 한 말을 내 마음대로 추측했다. 단지 추측이지만 저 슈렉고양이 같은 눈빛의 의미는 자신 있다. 분명히 저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전하고 싶어 온 몸으로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웃기게도 우비와 우산, 물에 젖어도 끄떡없는 젤리슈즈로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나가도 하염없이 쏟아지는 하늘의 눈물을 본 똘이는 제 스스로 현관문 밖을 나서지 않는다. 웃기는 놈이 그러면서 저런 눈을 하다니. 나로서는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열불이 난다.
비 오는 오늘은 집 뒤편 오십 미터 거리에 있는 일명 '오주미 존'에서 급한 볼일 해결을 위해 잠시 다녀온 것 말고는 바깥 외출은 없었다. 앞선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외 배변만을 고집하는 똘이와 살면서 생긴 습관 하나는 항상 똘이의 눈빛을 읽어 일정 시간이 되면 내 강아지의 용무를 확인하는 것, 컨디션에 맞춰 산책 나갈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태풍이 비바람을 몰고 올 줄 몰랐던 나는 놀랍게도 선견지명을 발휘했다. 이틀 전엔 차를 타고 집 근처 산책을 나가 한참 만에 돌아왔고, 하루 전에는 무려 두 시간의 거리를 엉덩이를 토닥여가며 산책을 시켰다. 그래선지 오늘 산책을 나가자는 말을 하지 않아도 똘이가 눈으로 회초리를 휘두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짧게 던 지 길 게던지 바깥나들이를 다녀온 똘이의 눈 앞엔 착한 개에게만 보인다는 투명 벽이 생긴다. 단을 올라서지 않고 신발 벗는 곳에 서서 애처롭게 나를 바라 볼뿐이다. 내가 용품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이리저리 움직인 후 자기 앞에 클렌징 티슈와 수건을 들고 앉으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단을 올라와 얼굴을 내어준다. 밖에 다녀와서 오만천지 냄새를 맡고 수풀에 얼굴을 묻고 온 똘이의 얼굴을 제일 먼저 꼼꼼하게 닦는다. 똘이가 왼쪽 앞발, 오른쪽 앞발, 왼쪽 뒷발, 오른쪽 뒷발 순으로 다리를 들어주면 차례로 발을 닦는다.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엉덩이와 꼬리를 보이게 서는데 이것이 바로 똘이의 산책 루틴이자 배려인 셈이다. 엉덩이를 탁탁 두 번 토닥이면 끝났다는 신호. 꼬리를 살랑이며 소파 위 고정석으로 폴짝 올라가면 만족의 산책이 비로소 끝난다.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 또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인 루틴은 똘이에게도 있다. 다음 산책을 위한 준비이자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똘이만의 배려인 셈이다. 자신이 그 날의 산책 경로를 결정하는 똘이는 날이 너무 덥거나 좋지 않을 때, 내가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을 때 등엔 짧고 간결한 동선을 돌아 집에 돌아오곤 한다. 아스팔트 위나 뻥 뚫린 길 한가운데에서는 절대 배변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풀이 무성한 곳을 선호한다. 응가 치우는 언니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배려지만 길을 다니는 이들을 위한 섬세한 똘이의 배려다. 이렇듯 반려견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람을 위한 배려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