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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절주절 신씨네Cine Jan 25. 2019

꼬맹이가 알려준 '나'의 가능성 <하나 그리고 둘>

그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잘 사는 것인지 장담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 대답은 어려워진다. 단언컨대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나 그리고 둘>(감독 에드워드 양)은 이러한 내 일상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드는 영화다. 그 의문은 나조차 잘 몰랐던 내 삶에 대해 스스로 탐구해보게 하는 힘이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지극히도 평범한 한 가족의 일상을 조명한다. 그 가운데에는 8살 소년 양양이 있다. 또 아주 평범한 꼬맹이인 양양은 아빠 NJ에게서 받은 카메라로 가족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그 카메라 속엔 사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3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아빠 NJ, 외할머니가 사고로 쓰러진 뒤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 있게 된 엄마 민민, 외할머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누나 팅팅의 모습이 담긴다. 단순히 사진을 찍은 것뿐이겠지만 왠지 이 순수한 소년의 카메라 필름에는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인생의 진실이 깃들어 있는 듯 보인다.


오프닝은 소년 양양의 외삼촌 결혼식장이다. 모두가 즐겁고 떠들썩한 이 날, 갑자기 외할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지며 가족들 모두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 갑작스런 분위기 변화는 마치 인생은 이처럼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삐거덕거리며 이어진다. 이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올해는 대길(大吉)이래”라고 말하는 외삼촌의 믿음이 우스워 보일 만큼 기쁨과 슬픔을 무수히 교차시킨다.       

      



이 서사가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얼까. 영화와 함께 아주 찬찬히 되돌아보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대다수의 감정들은 모두 관계에서 나온다는 게 불쑥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인물들의 기쁨도 역시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나타난다. NJ는 30년 만에 만난 첫사랑, 사업차 만난 일본인 사업가 오타를 만났을 때 미소 짓고, 팅팅은 이사 온 옆집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을 때나 남학생 패티의 마음을 알게 됐을 때에 환히 웃는다.


반면 슬픔과 좌절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하면서 찾아온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에서 쓰러져버린 할머니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말을 듣는지 잠을 자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할머니 앞에서 하는 것이라곤 메아리 없는 자잘한 푸념뿐이다. 그 푸념은 특히나 내 일상에 기쁨을 주었던 새로 맺은 관계에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더 큰 한숨과 눈물을 동반한다. 그만큼 우리네 감정이 관계라는 것에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른들의 이 같은 감정적 파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소년 양양이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이자, 또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 단 한 명의 인물이다. "왜 할머니께 아무 말하지 않는 거니?"라며 타박하는 엄마에게 “내가 그린 그림 보여드리고 싶은데 못 보시잖아요”라는 어린 투정을 하는 양양은 ‘내게 보여지는 것’을 전부라고 여기는 ‘꼬마애’다. 뭐든지 직접 보고 느낀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심지어 학교 선생님에게까지 “직접 보지도 않고 왜 나를 혼내세요”라며 따져 묻기까지 하는 당돌함도 갖추고 있다.             




그런 양양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NJ와의 대화에서 꺼낸 “우린 왜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앞만 보고 뒤는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이는 것 같아요”라는 대사다. 이 대사는 영화 내내 양양이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뒤통수를 찍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인간은 모두 관계 안에 살아가면서 내 시선은 늘 내가 아닌 남에게만 향한다. 그렇기에 나라는 사람의 규정은 늘 타인에게 의존하는 수밖엔 없던 것이고, 또 그 규정에 의해 내 감정은 휘둘리고 마는 것이다. '내 시선'만을 믿는 어린 양양의 눈에 그런 어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어쩌면 어린왕자가 욕심 많은 인간들을 봤을 때 품었던 그 의문스러움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양양의 사진은 스스로를 등한시했던 어른들에게 생전 처음으로 내 이면을 바라보는 경험을 준다. 이 어른은 극 중 인물을 뜻하는 말이지만, 사실 서사에서 한발짝 떨어진 관객이기도 하다.




이윽고 도달하고 마는 엔딩에서 괜스레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친다. 양양의 이 모습은 아마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았던 에드워드 양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뒤통수를 찍은 것은 아닐까. 엔딩 시퀀스에서 소년 양양은 할머니를 향한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커서 뭘 하고 싶은지 아세요? 사람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말이다. 물론 에드워드 양이 <하나 그리고 둘>을 만들 때 이러한 의도를 갖고 찍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미처 모르고 살았던 부분을 깨우쳐주는 양양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너무도 명확하고 괜스레 쓸쓸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당신에겐 당신도 모르는 이면의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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