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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절주절 신씨네Cine Jan 25. 2019

'극한' 삶을 사는 당신, 극장으로 떠나라

<극한직업>의 멋

재밌다. 영화를 보고 이 한 마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을 보고난 후의 감상이다. 코미디라는 장르 외피를 쓰고, ‘웃음’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아주 멋지고 통쾌하게 가닿는다. 이병헌 감독의 전작인 <스물> <바람 바람 바람>이 풍겼던 도발적 매력을 조금 덜어내고 나니 웃음이 더 커진 느낌이다.

 


<극한직업>은 실적 바닥의 마포경찰서 마약반이 해체 위기에서 국제 범죄조직의 마약 판매 정황을 포착하고 그 뒤를 쫓는 이야기를 담는다. 고반장(류승룡), 장형사(이하늬), 마형사(진선규), 영호(이동휘), 재훈(공명) 등 다섯 경찰은 24시간 잠복수사를 위해 범죄조직 아지트 앞에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을 하지만, 마형사의 손맛 덕에 맛집으로 소문나 대박집으로 거듭난다.


짧은 스토리 설명만으로도 <극한직업>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현재 대한민국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모든 직장인들의 끝은 치킨집’이라고 자조하는 사회이기에 더욱 그렇다. 박봉으로 유명한 공무원들이 범인을 추격하다 (아마) 생전 처음 돈맛을 느껴 고민한다는 설정은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거듭된 실적부진으로 후배들의 승진을 지켜보며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래...’하며 시무룩한 고반장의 모습이 겹쳐지며 설정에 생동감을 더한다.

 


사실 이병헌 감독은 <스물> <바람 바람 바람>으로 자신의 코믹 능력치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바 있다. 하지만 앞서 그가 직접 적어낸 시나리오 속 “니 엉덩이에 내 XX 비비고 싶어” “잘 치게 생기셨네요” 등등의 섹슈얼한 유머 코드의 대사를 듣는 순간, 관객의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크게 웃거나 혹은 고개를 돌리거나. 중간이 없는 호불호 코드였다. 그 불호의 박해는 <바람 바람 바람>에서 꽤 거세져 흥행 참패의 성적표를 받아들기도 했다.


하지만 <극한직업>은 느낌이 다소 다르다. 감히 얘기해보자면 이 작품은 이병헌 감독 영화 최초로 호(好) 코드의 영화다.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루는 폭이 넓어진 인상이다. <스물> <바람 바람 바람>이 다수의 관객들이 감추고 있는 섹시한 본심을 드러내며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목적이 보였다면 <극한직업>은 보다 보편적인, 관객친화적 서사를 드러낸다. 고반장 캐릭터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직장에서의 실적 압박, 가장으로서의 고된 삶 등이 대표적이다. 201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의 모습에서 자기연민을 느낄 법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전작들에서 이병헌 감독의 장점으로 손꼽혔던 ‘차진 대사’또한 꽤 유효하다.


그런 면에서 코믹한 ‘수사극’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증거를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수집해 범인을 뒤쫓아 수갑을 채우는 멋은 <극한직업>에서 느끼기 쉽지 않다. 

 


그러나 수사가 아닌 관객들의 웃픈 현실을 담아낸 코미디 영화로만 바라본다면 그 감흥은 배가된다. 표면의 마약조직을 소탕하려는 형사들의 좌충우돌 스토리만으로도 빅재미를 주지만, 거기에 더해진 관객들의 극장 밖 처절한 삶이 적절히 녹아져 웃음과 통쾌함을 이끄는 면모는 다층적 매력까지 선사한다. 가볍게 봐도 메인 빌런인 마약상 이무배(신하균)는 마약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악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뭇 관객들이 그를 악으로 여기는 건 고반장의 치킨집 수익에 큰 위험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의 가장 큰 카타르시스는 극 후반부 스스로를 ‘소상공인 대표’라 칭한 고반장이 이무배를 향해 날리는 펀치에서 느껴진다.


사실 이 지점은 아이러니하다. 웃을 일 없는 현실이 너무도 느껴지는 배경임에도 포인트를 찾아내 웃음을 전한다는 것.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이들에게 한방 먹인다는 ‘희망사항’을 오직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게 슬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짧지만 관객들에게 현실로부터의 도피감을 전한다는 건 꽤 멋진 영화의 순기능은 아닐까하는 감상을 남겨본다. 현실 속 ‘극한’의 삶을 살고 있는 당신,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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