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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절주절 신씨네Cine Mar 10. 2019

<캡틴 마블> 긍정적 메시지, 아쉬운 한 끗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팬들이 ‘마블’이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가 참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캡틴 마블>(감독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은 개봉 전 여러 논란으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냈지요. 하지만 우려보다 더 큰 ‘마블’의 아우라로 개봉과 동시에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마블 첫 여성 히어로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곧 개봉할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힌트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 기대감일 테지요. <캡틴 마블>은 그 기대감을 꽤 만족시켜주는 영화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결정적 한 끗의 부재’가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캡틴 마블> 개봉 전 주연을 맡은 브리 라슨(캡틴 마블/ 캐럴 댄버스 역)이 영화에 대해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녀 말마따나 이 영화는 다분히 페미니즘적 색채가 들어가 있지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빠른 편집으로 70-80년대 여성이 겪은 가족, 사회적 차별을 나이브하게 전달하며 그 색깔을 명확해집니다. 극 중 캐럴 댄버스와 마리아 램보(라샤나 린치 분)의 “난 너에게 증명할 필요 없어” “레이디라고 부르면 거기를 걷어 찰 거야”라는 대사도 약간은 노골적이지요.


하지만 이 확고한 메시지가 불쾌하게 다가오진 않습니다. 파일럿이 되고자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벽에 부딪히고 말았던 캐럴과 마리아의 사연은 당시엔 정말로 일상이었던 까닭이고, 또 지금도 ‘유리천장’이 많은 여성들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여성 히어로의 탄생이 반갑게 다가옵니다.


<캡틴 마블>이 품고 있는 이 메시지에 나름 격한 공감을 하고 있지만, 영화가 관객들에게 그 같은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느냐는 다소 의문입니다. 으레 히어로 시리즈 무비의 첫 번째 작품은 히어로의 성장 배경과 능력 각성 과정, 히어로로서 결심을 다지는 이유 등이 등장해야만 합니다. 물론 본 투 비 히어로라면 이 일련의 서사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캡틴 마블은 평범한 인물에서 우연한 계기로 힘을 얻게 된 후천적 히어로니까요. 그런데 <캐빈 마블>은 이 지점에서 다소 게으른 서사를 차용합니다.

 

캐럴 댄버스는 과거의 기억을 잃고 크리족 행성에서 욘-로그(주드 로)에게 훈련을 받습니다.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억제한 채 “능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해. 감정적이 되지 말아라”라는 말을 들으면서요. 때문에 캐럴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남성의 요구에 따라 능력을 감춰야만 하는 여성의 모습. ‘페미니즘’에 엮어 생각해보면 이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 것 같습니다. ‘여성의 능력을 억압하지 마세요’라며 역설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다소 아이러니한 건, 캐럴이 이 능력을 얻게 된 계기가 본인의 노력이 아닌 단순한 폭발 사고를 통한 우연이었다는 겁니다. 허약한 몸을 가졌지만 ‘근성과 용기’로 캡틴 아메리카가 된 스티브 로저스(<퍼스트 어벤져>), 자신이 만든 무기가 세상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며 아이언맨이 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삼촌의 죽음을 통해 큰 힘엔 책임이 따른다는 진리를 알게 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와 비교해보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히어로가 돼야하는 이유를, 그 힘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드러낸 바 있지요.


반면 <캡틴 마블> 속 캡틴 마블은 이유가 없습니다. 캐럴이 힘을 얻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거나, 그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사용할 그릇이었다는 표현은 전혀 없습니다. 단순히 ‘그 자리에 그녀가 있었기 때문’에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인데, 이 게으른 설정은 ‘여성도 위대할 수 있다’는 영화 메시지의 동력을 다소 깎아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럴이 귀 밑에 붙은 통제장치를 떼어내고 모든 힘을 발산하는 클라이막스 장면은 큰 감흥 없이 미적지근하게 다가옵니다. 오히려 “힘을 증명해라”는 욘-로그의 대사에 더 공감이 갈 정도니까요.

 


그리고 캐럴의 힘에 이유가 부재했기 때문에 ‘캡틴 마블’이란 히어로의 특색도 다소 희미해지는 인상을 받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현재 전 세계 영화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던 건, 무수한 히어로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끈기와 용기를 갖춘 리더, ‘아이언맨’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과학자, ‘토르’는 번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신,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사 등등 제각각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특색을 갖췄죠. 그런데 이들과 달리 캡틴 마블은 특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다소 힘듭니다. 제 머리로는 ‘남자를 이기는 여자’ 혹은 ‘엄청 센 여성 히어로’ 정도로 밖엔 떠오르지 않네요.


물론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큰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 영화’ 이전에 ‘히어로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조금 더 확실히 다잡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다소 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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