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과 공생하는 방법
하루는 내 스킨케어 제품이 다 떨어졌다. 알레는 자기가 사용하던 제품을 들고 오더니 "이거 어때? 이 스킨케어 제품 꽤 유명해." 하고 나에게 권했다.
"좋은데? 어디서 샀어?"
"다음에 살 때 큰 용량으로 살게, 같이 쓸까?"
그렇게 난 알레랑 같은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 하루는, "오는 길에 세탁세제랑 섬유유연제 사 왔는데, 향기가 너가 좋아할 향기야. 어때?" 하며 세제 뚜껑을 열어 나에게 가까이 대어주었다.
"좋은데?"
"그럼 다음에도 이거로 살까?"
그렇게 내 옷들에선 항상 그 세제와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살림살이들(욕실, 주방 청소/위생 용품, 세탁 세제류, 세면/샤워 용품, 스킨케어 제품 등) 모두가 자연스레 비건, 크루얼티-프리(동물실험 하지 않고 생산된) 제품들이 되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러다, 샴푸와 컨디셔너가 다 떨어진 어느 날은, 내가 먼저 알레에게 물었다. "비건, 크루얼티-프리 샴푸나 컨디셔너 아는 거 있어?"
공유하는 걸 좋아하고 복잡한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알레랑 간소한 몇 가지 제품들로 함께 공유하며 사용하는 게 편하고 좋았나 보다.
감사하게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선 쉽게 비건, 크루얼티-프리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서, 물질적인 걸 구매할 때는 나도 비건과 크루얼티-프리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되었다.
처음은 마트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제품을 고르질 못해 ‘이 정도로 해야 하나.’ 답답했는데, 지금은 처음과 달리 딱히 찾아보고 알아볼 필요 없이 간단하게 사용했던 제품과 같은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 오히려 구매과정이 쉽고 간편해졌다.
비건, 크루얼티-프리 제품은 생산과정이 윤리적이고 성분이 비건이라, 제품의 질 자체만 보더라도 순하고 올가닉해서 좋았다.
내 구매행동이 동물들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으니, 자연 스래 구매 만족감 또한 높아졌고 내 삶의 행복감도 풍성해졌다. 몰랐던 걸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준 알레에게 고맙다고 마음을 표현했고, 알레도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기쁘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공생의 과정이 한층 쉬워졌다.
우리 집 주방은 알레가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어째 저째 자연스레 이미 비건키친이 된 상태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가끔 내가 고기류가 땡기는 날이면, 나는 고기나 생선을 마트에서 사냥해 와 요리를 한 후, 알레가 해준 요리 위에 토핑식으로 볶은 고기를 올려 먹거나 구운 생선 같은걸 반찬식으로 옆에 두고 먹는 편이다. 알레는 고기에 알러지가 있거나 고기가 싫어 안 먹는 게 아니라, ‘생명존중'의 관점으로 비건이 되기로 스스로 결정한거라, 고기 냄새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지 않다.
가끔 비건이 아닌 내가 주방에서 사부작사부작 요리를 할 때, 우연히 알레가 고기냄새(특히 생선 굽는 냄새)를 맡게 되는 날이면,
“냄새 너무 좋다. 맛있겠다!” 하고 나에게 말하기도 한다.
대신 고기 요리는 내 몫이고, 알레가 먼저 사용했던 조리도구들을 내가 2번 타자로 사용한다. 그럼 알레도 나도 같은 조리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설거지 거리가 늘지 않는다.
주방에서 같이 요리하며 살기 위한 우리만의 공생의 룰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함께 다른 요리를 하는 날은 많이 드물다. 내 식성을 꿰뚫고 있는 알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이미 ‘비건화’ 하여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알고, 요리해 주길 즐겨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물개박수로 큰 리액션 해주고 "너무너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당-!" 하고 먹는 거다.
그럼 다음에도 또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나의 생존 방법이다. (다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