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스 May 07. 2023

치즈 맛집인 줄 알았더니

비건 액티비즘

긴 테이블 위에 여러 종류의 식물성 치즈들과 우유들 (오트, 소야, 아몬드, 코코넛 우유 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길을 걷다 궁금해서 기웃거리다 지나가려는데, 그 무리 중 한 분이 “비건 치즈 드셔보세요.” 마트 시식코너 언니처럼 다정히 나에게 물어보길래 좋아서 넙죽 받아먹으러 다가갔다.


비건 이벤트였다.


내 옆에 있던 알레는 일반치즈건 비건치즈건 치즈 자체의 팬이 아니라서 눈으로만 구경하는 듯 보였고, 그런 알레에게 다른 액티비스트 한분이 다가와 비거니즘에 대해 운을 띄우며 오늘 하는 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자연스레 입에 이미 뭐가 많이 든 나보다는, 구경하고 있는 알레가 대화의 타깃이 되었다.


알레도 가끔 비건 이벤트에 참가하곤 해서,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감사히 즐기는 듯 보였고, 결국엔 두 사람이 엄청 잘 통해 보였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본격적으로 시식코너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 치즈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 너무 맛있어서 물어봐야만 했다.


나에게 비건 치즈를 권했던 그 다정한 액티비스트께서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셨고, 뿌듯해하며 자기도 그 비건 치즈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다음에 와인이랑 같이 먹을 생각에 신나서 폰에 메모해 두었다. 때마침 알레도 대화를 끝마쳐 자리를 뜨려는데,


미소를 지은 알레가 액티비스트 분들께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전했다. “좋은 활동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여긴 치즈 맛집이 아니라 비건 이벤트였어.'





그 후 며칠이 지나 시티센터에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너무 좋았던 햇살을 즐기며 약속장소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 비건 이벤트를 하는 듯 해 보이는 광경을 발견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여러 형태의 비건 액티비티를 하는 듯해서, 한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비건 치즈와의 좋은 기억이 있던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 그룹에 자꾸 눈길이 갔다. 하지만 이번엔 맛있는 치즈를 건네주었던 그 다정한 분들이 아닌,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쓴 채 고요히 모니터를 들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Anonymous for the Voiceless 비건 액티비스트들과 거리 사람들 / © Maria Chiorando


모니터에선 사람의 편의를 위해 동물들이 어떻게 실험이 되고 어떠한 방법으로 죽어 상품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영상 장면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아 피해오던 이면의 사실이었다.


평소면 지나갔을 텐데, 알레를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모니터를 보았다. 눈물이 난 건 1초의 찰나였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아프듯 그 비슷한 마음이었다.


내가 봤던 영상 장면에 있던 동물은 몽실몽실 구름같이 새하얀 양이였다.


항상 하이킹할 때마다 발견하면 귀여워서 구경하며 사진 찍던 양이였다. 귀여워서 쓰다듬고 싶다는 마음만 들었지, 그들에게 일어나는 이면의 일들은 신기하게도 관심 밖이었다. 양가죽이라 하면 고급스러운 질감의 지갑이 떠올랐지 죽임 당하는 양이 떠오르지는 않았던 것처럼.


액티비스트 한분이 나에게 다가와 티슈를 건내 주었고, 영상을 보고 느낀 마음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뜨기 전 나에게 물어봤다. “혹시나 원하면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원하세요?”


그렇게 웹사이트 주소가 적힌 작은 카드를 받아왔다. (다음화)


비건 이벤트에서 받아온 카드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에 비건이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