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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와 누 Oct 09. 2023

제28회 BIFF
23년 10월 7일에 본 영화들

<푸른 장벽>, <청년정치백서>, <끝없는 일요일>, <스크림>

<푸른 장벽>(아그네츠카 홀란드, 2023, 152분)

유럽 난민 문제에 관한 영화다. 여러 인물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잘 정돈되어 있어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난민 문제에 대한 잔잔한 희망과, 최근 발생한 또 다른 난민 문제를 비추며 끝나는 방식도 적당했다. 다만 약 두 시간 반에 달하는 상영시간은 버거울 수 있으니 유의 바란다.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이일하, 2023, 99분, 이하 <청년정치백서>)

난 이일하의 자극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좋아한다. 가령 <청년정치백서>에서, 이승만-박정희-박근혜 사진이 걸려 보수당의 사무실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는 장면을 보자. 카메라는 처음에 무시하고 진입하지만, 화면 가로 사진들이 사라질 때 즈음 결국 참지 못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려 사진들을 찍어버린다. 이런 움직임 말이다.     


<청년정치백서>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줄었다. 어쨌든 영화는 언제나의 이일하 영화처럼 웃기니 좋아하는 주제라면 보길 바란다.

     

<끝없는 일요일>(알랭 파로니, 2023, 115분)

윌리엄 이글스턴이 찍은 젊은이들의 사진 이미지가 움직인다면 <끝없는 일요일>의 영상 이미지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해가 지려고 할 때, 그러나 황혼의 때가 아닌 오후 4-5시 즈음의 때만 있다. 거기서 젊은이들은 어쩌면 황혼보다 더 빨리 지나갈 때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처럼 빠르게 질주한다. 물론 끝은, 스프링스틴과 닮았으니, 배드 엔딩이다.     


따라서 까칠하게 군다면 이미지는 윌리엄 이글스턴, 내용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니 이 영화는 특별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의 즐거운 발견”이라는 프로그램 노트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두 장면은 특별하다. 첫 번째 장면은 알렉스(엔리코 바세티)가 총을 들고 발개 벗은 채로 야간의 해변을 거니는 장면이다. 여기서 그를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기이한 녹색조명을 켜고 낮은 자세를 취한다. 이 녹색조명은, 웃기려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나라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동물을 야간 촬영하기 위해 쓰는 녹색 빛과 닮았다. 하필 카메라가 낮아 더 그렇게 보인다. 정말로. 어쨌든 그렇게 해서 그전까지만 해도 주황빛 가로등 아래에 있던 영화의 색이 삽시간에 바뀌며, 단지 빛은 밝기의 문제인 줄 알았던 우리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에 빠진다. 빛은 밝기도 문제지만 색도 문제다.     


두 번째 장면은 알렉스가 절망에 빠져 장대비 속 묘지에 서 있는 장면이다. 비를 촬영하기 위해 비춘 주황빛 가로등 조명을 카메라는 로우 앵글로 찍어, 광원은 대놓고 보인다. 나아가 비가 내리는 데 로우 앵글로 찍으니 렌즈에 물이 계속 튀어 화면은 점점 가려지고, 렌즈에 맺힌 물방울에 빛이 비칠 때 나타나는 특유의 산란((散亂)이 우리의 집중을 뺏는다. 그리고 알렉스 뒤에서 비와 빛을 맞으며 서 있는 거대한 동상은 카메라와 알렉스를 위협한다. 내가 아는 한에서, 비를 촬영하는 장면 중 이렇게 강렬해 보이려고 신경 쓴 장면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편, 이 영화에는 특별한 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에서 본 장면도 있고, 그리고 그 장면은 불쾌한 점과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할 점이 있다.     


우선 그 “다른 영화”가 뭔지 말해보자. <켈리 갱>(저스틴 커젤, 2019)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세상과 척을 진 끝에 전부와 맞서려는 한 청년을 본다. 그리고 영화는 그 청년을 점멸하는 화면, 그러니까 깜빡거리는 화면으로 우리에게 보인다. <끝없는 일요일> 또한 후반부에서 마찬가지로 세상 전부와 붙어 보려고 구는 알렉스의 클럽 결투 장면을 이러한 점멸로 보인다.     


우선 이 두 장면의 불쾌한 점은 명백하다. 관객의 눈이 아프다는 것이다. 당신이 광과민성 발작을 앓고 있지 않다고 해도 이런 장면은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다. 속된 말로, 감독이 관객에게 ‘눈뽕’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할 점은 이 장면의 의도와 효과다. 이 점멸 장면들은 주인공의 내면의 불안정함을 관객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임을 누구라도 안다. 그렇담 돌려 말하지 말고 곧장 물어보자. 당신은 이런 장면, 한 인물의 내면을 곧장 관객과 영화가 마주하는 표면으로, 즉 스크린으로, 그 스크린 밝기의 극명한 대비로 나타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을 느끼게 만들려고 한다면 표정이나 대사의 미묘한 변화, 직접성의 정도가 심화된다면 독백을 내레이션으로 넣기 또는 카메라와 인물의 시선 동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스크린이라는 표면이 아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반면 <켈리 갱>과 <끝없는 일요일>의 두 장면은 표면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이런 시도는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두 장면에는 자기(自己)와 관련된 감각들, 그것이 자아도취이든 자기비애이든 간에 자기와 관련된 감각들이 강하다. 세상과 맞서 싸우는 혼자인데 어련하겠는가. 그리고 관객은 안 그래도 이러한 감각에 부담스러움을 느끼는데, 마치 그러한 감각을 “너희들도 느껴라!”라고 외치는 듯이 표면을 통해 강요하는 두 시도는, 솔직히 말하면, 꼴불견이다.   

  

‘직접적인 것=과시적인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낡은 등식이 내 머릿속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영화에 비해서 감상문의 양이 많은 것을 보아하니, 젊은 감독의 감각과 영화의 미래·변화를 생각해 보기 위해 한 번 즈음은 봐도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스크림>(켄제벡 샤이카코프, 2023, 108분)

난 매년 영화제에서 중앙아시아 영화를 최소 한 편 본다. 그리고 결과, 이제 그 영화들의 회색톤과, 끈질기게 한 숏을 유지하면서 마디가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에 익숙해졌고, 지평선이 지나치게 자주 보이는 화면을 좋아한다.     


<스크림>은 여기에 크리스마스 색을 더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과장 없이, 붉은색과 초록색이 모든 장면에 들어있다. 전부 회색이니 크리스마스 색은 부각된다. 이런 끈질긴 감독의 의도와 고집으로 '소련 핵실험과 주민들의 피해'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 내용과 달리 이미지는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느껴진다. 마디가 긴 대화를 지겨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영화제 중간에 가볍게 볼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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