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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Feb 07. 2022

운수 좋은 날

기분 좋은 날이었다. 새해 첫 출근하는 월요일이었고, 언제나 처음은 설렘을 동반하듯 활기찬 기분으로 시작한 하루였다. 늦게 잠을 잔 탓에 무거울만한 몸도 그날은 가볍게 일으킬 수 있었다. 타이밍 맞게 도착한 지하철도 적절한 시간에 난 자리도 모두 좋은 예감을 주는 날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연말 휴가 전 정리해 두었던 깨끗한 내 책상이 환하게 날 반기는 듯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여느 때처럼 커피를 들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회사 내 확진자 발생으로 당장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안내 메일이 도착했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부랴부랴 도착한 선별 진료소가 점심시간이라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부터였을까, 돌이켜보면 불길한 예감이 들만도 한 사건이었지만, 나는 그저 가볍게 넘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선별 진료소를 찾아가 검사를 받고 집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켰을 때 비로소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 비극은 바로 회사 메일로 도착한 '승진 발표 메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팀 사정이 안 좋아, 아쉽지만 이번에는 승진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명단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같은 팀 동료의 이름.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머리가 멍해졌다. 누가 찬물을 뒤집어 씌운 것처럼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고, 망치로 머리를 맞아 뇌가 잠시 운동을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뒤통수를 맞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그 후로도 한참을 혹시 내가 잘 못 본 것은 아닌지, 혹시 내 이름이 있었는데 못 본 것은 아닌지 메일을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여러 번 그 행동을 하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때부터 분노와 서러움, 수치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나의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명단에 있는 동료가 아닌 내 상사였다. 이 코로나 상황에서 승진이 가능한 것이었는지, 그렇다면 나는 왜 승진이 안 된 건지, 그보다 왜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미리 말해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지만, 당장 전화하기에는 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애꿎은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쉽사리 달래지지 않았다.

"웃긴다, 왜 너는 안 해주고? 기준이 뭐래?" "속상했겠다" "어차피 나가려 했잖아, 명분이 생겼네, 잘됐네!" 등 각양각색의 위로의 말들이 고맙고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고, 혼자가 되면 다시 무거운 감정들이 나를 물밑으로 가라앉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상사에게 묻지도 못했고, 상사 역시 나에게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팀의 승진 발표에 대한 나름의 이유는 여기저기서 전해 듣고 눈치로 알게 되어 물어볼 필요도 없게 되었다. 이미 물어볼 타이밍은 놓쳤고, 처음보다는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찜찜하다.

어찌 보면 그저 매년 있는 승진 발표이고,   물먹었다 해서 직장생활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내년 승진을 기대하면  일인데, 내가 이토록  충격을 받은  어쩌면 상사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미   어른이고, 회사 상황 뻔히 아는 8  직원인데, 설마  정도도 이해  할까  나에게 설명을   준건지, 상사의 이런 태도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물론 처리해야  다른 바쁘고  일들이 많고, 또 대부분의 상사들이 원래 말을 안 한다 하더라도, 사람을 다루는 리더라면 적어도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구성원의 감정에 대한 공감은 리더로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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