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한 주피 Dec 30. 2020

글쓰기 vs 음악 선곡

- Photo by Mick Haupt (https://unsplash.com/@rocinante_11)


한때는 배설하듯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지만 초창기 블로그에서는 선두주자였던 Blogin.com.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글을 썼습니다.  


기억하기로는 그 당시 2년 연속 대한민국 무슨 대상도 받고 했던 사이트였지만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싸이월드 등 구찌가 큰 경쟁사와 상대하기는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서버비를 대기 위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금하기도 했었는데요, 결국 결국 자본 앞에서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배설하듯이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있어 큰 변곡점이기도 했고, 불확실의 무게가 하루아침에 단위가 바뀌는 상황이기도 했구요. 취해서 쓴 글을 다음 날 비공개로 바꾸는 게 해장의 시작이기도 했구요. 


입사 초반 때까지는 블로그가 살아있어서 가끔 글을 썼는데요, 그곳이 안녕을 선언한 이후에는 글은 트위터에 끄적이는 몇 글자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글로 조금 더 명료하게 표현하면서 마주치기보다는 음악이라는 어쩌면 두루뭉술하지만 여러 지점을 아우르는,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느낌적 느낌이라고 알려주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회사와 직업적 특성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거구요. 


제게는 글쓰기와 음악 선곡은 같은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글을 그 지점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는 작업이고 음악 선곡은 그 지점에서 근처의 여러 흔적과 실타래를 같이 묶어 들어 올리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더 안으로 들어가는 걸 회피하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 작업을 하며 걸어가며 부딪히다 보면 또 다른 무언가에 닿는 순간이 오겠죠. 


오늘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는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Chris Botti)가 리메이크한 Emmanuel입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앨범 버전보다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루시 미카렐리(Lucia Micarelli)와 함께한 라이브 버전이 제겐 무척 다가왔는데요. 크리스 보티가 2008년 보스턴에서 자신의 밴드, 보스턴 팝 오케스트라와 함께 여러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라이브 공연을 했고 이를 앨범으로 담았습니다. 이때 참여한 아티스트가 스팅, 도미닉 밀러, 조쉬 그로반, 요요마, 존 메이어, 스티븐 타일러(에어로스미스 보컬) 등 최고의 아티스트들이었구요. 저는 유튜브로 처음 이 앨범을 만났구요, 이 중에서 Emmanuel이 가장 다가왔습니다. 일본 도쿄 후배 녀석 집에 놀러 갔다가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이 앨범을 발견하자마자 가격도 보지 않고 집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Luci Micarelli는 현악기의 특성을 정말 잘 살려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떤 감정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 청자를 압도하는데요, 무엇인지 모를 감정을 건드리며 계속 커져 마치 안개처럼 앞을 가려 어디 있는지 모를 때 크리스 보티의 트럼펫이 금관악기의 특성을 정확히 표현하면서 마치 칼같이 치고 들어와 감정의 구름 속에서 '바로 여기야!'라고 알려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바이올린은 표시한 감정을 다시 확장시키며 대화를 나누는데요. 부피와 무게를 거칠게 확장시키던 음악이 정확한 하나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밀도가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 공연에서 크리스 보티는 이 곡을 연주하는데요,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보다 루시 미카렐리와 함께 연주한 이 버전이 제 마음을 가장 움직인 것 같습니다. 


Chris Botti  <Chris Botti in Boston>

Chris Botti / Emmanuel (feat. Lucia Micarelli) 



오늘의 믹스테이프는 그냥 추가로 올리는 거구요, 제가 글과는 엮지 못하고 유튜브에 올린 걸 공유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글을 생각하며 선곡을 했는데, 글은 어느 순간 방향을 잃어 서랍 속에 다시 넣어두고 노래만 남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믹스테이프 - 다린 노래 모음 Part 2

 믹스테이프 - 조금 색다른 숨겨진 리메이크 곡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힘든 시절이지만 마음에 평화와 위로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