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아이가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지난 4월부터 아이에게 부지런히 관련 책들을 실어 날랐다. 예약하거나 상호대차, 혹은 중고매매를 통해서 구해다준 책들을 아이는 부지런히 읽어주었다. 책을 구해다 주는 일이 전혀 수고스럽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중간에 있던 모의고사도 92점으로, 합격선(80점)을 훌쩍 넘었다. 모의고사는 이전의 시험문제를 바탕으로 나오는 문제이므로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상태로 응시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 마음도 꽤 여유로웠다.
시험을 치르자마자 어디든 데려가겠다는 부푼 마음을 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전환 삼아 훌쩍 떠나고 싶었다.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마음이 붕 떴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서울 축제'라는 키워드로 이곳저곳을 서치 했다. 하지만 축제시간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로, 시험이 끝나는 1시경 출발해서 도착하면 공연이나 행사는 이미 끝난 2시 정도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었다. 요즘 심심하면 얘기하는 한국사 유물도 볼 수 있고 주변도 쾌적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더불어,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지인에게도 연락했다. 올 수 있다면 그의 아이와 함께 와 달라고.
아이는 들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지인의 아이 이름을 말하며 "ㅇㅇ이는 언제 와?" 물었다. 한국사 유물보다 동생과 만나서 놀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공기도, 날씨도 맑은 날의 방문이 처음이었기에 그곳의 풍광에 더더욱 들뜰 수밖에 없었다. 멀리 남산타워가 선명하게 보였다. 연못엔 주황색, 하얀색의 알록달록한 잉어들이 노닐고 카페 뒤편에는 하늘 높이 자란 소나무와 수풀이 무성한 녹지도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땐 장마철의 한가운데였던 비 오는 날이었기에 박물관 내부만 보여주었다는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
병원에 갔다던 지인은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서먹해하던 아이 둘에게 간식을 사 먹이고 우리는 커피를 사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간식을 먹는 둘을 멀리서 바라보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우리의 티타임을 위해 아이들에게 각기 다른 나뭇잎을 10가지 정도 뜯어오라 일렀다. 푸르른 녹지 주변의 벤치에 앉아 따뜻하다 못해 다소 뜨거운, 하지만 어딘지 기분 좋은 5월의 햇살을 받으며 지인과 서로의 안부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서서히 긴장을 풀고 즐겁게 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뭇잎만 뜯어오라고 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까지 함께 데려오더니 곧 집을 지어주느라 분주해졌다.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지인의 남편이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왔다. 함께 식사를 하러 갈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숙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애걸복걸하며 더 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남편도 없이 이 가족과 함께 식사자리에 가는 일이 어딘지 불편했다. 그냥 헤어지자고 아이를 달랬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눈물도 보였다. 간신히 아이를 달래고 있었지만 사실은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지인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부담이 될 것만 같아서 갈등에 갈등을 반복하고 있었다. 식사비용을 전액 다 내가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부담이 덜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와 나를 데리러 시간에 맞춰 와 줄 수 있는지, 그 여부에 따라 우리가 시간을 더 보낼지 말지 결정하기로. 남편은 피곤한 상태임에도 울먹이는 아이를 위해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덕분에 우리의 외출시간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지인의 차를 타고 근방에 위치한 지인의 동네로 이동해서 아이를 조금 더 놀렸다. 뜨거웠던 여름 햇살이 사라지고 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터를 누비며 놀기 시작했다. 다른 동네에서 새로운 놀이기구를 타고 노는 아이는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이렇게 놀라고 해도 지치지 않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중간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간식만 채워 넣어준다면 아이의 행복지수는 끝도 없이 올라갈 것이 뻔했다.
지인의 머리에서 나온 메뉴 선정으로 나는 저녁메뉴 고민마저 날려 보낸 산뜻한 5월의 토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뿐인가. 그 동네의 핫플 과일주스집을 알아본 덕분에 우리 모두 추운 저녁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고 상큼한 후식도 즐겁게 마실 수 있었다. 이어진 보드게임과 사부작사부작 잘 놀던 아이들은 또 어떻고... 우리 아이는 밤 11시까지 놀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서 지인의 남편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하하하하하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의 두 가정이, 별다른 이벤트도 없이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라도 조만간 날 잡아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의 주말이 저물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착실한 우리 아이에게는 숙제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밀린 숙제를 위해 일요일 오전부터 우리는 분주했다. 느지막이 일어나긴 했어도 눈뜨자마자 아이는 입을 내밀고 숙제를 시작했다. 목록은 무려 열 가지나 되었다. 그 모든 걸 대강대강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엄마인 나는 쉬는 건 쉬는 거고 숙제는 제대로 하라는 스타일이라 시간이 걸렸다. 전날 기분전환 덕분인지 이전보다 빨리 화를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헐크였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숙제를 마무리 지었다. 승부욕도 있고 엄마의 불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는 결국 마지막까지 해냈다. 마치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끝낸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였더라도 이렇게 숙제를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 많은 숙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도. 중고등학생 시절 놀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막상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준비해두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워서 발을 구르고 내 머리를 내가 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기에, 늦게 준비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기에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에게 숙제를 시키는 중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감당할 수 있는 선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욕심이 많고 잘 해내는 성격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적절히 휴식을 취하고 뇌를 쉬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아이마다, 또 성장기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적절하게 시간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아이를 숨 막히게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금, 토 양일을 내리 놀았기에 일요일에 숙제가 밀려있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것, 그래서 힘들었지만 놀았던 시간이 있었으니 괜찮다는 생각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주말은 위태로웠으나 큰 문제없이 지났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아이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걸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나 역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이가 즐겁게 학업에 전념할 정도의 수준, 그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기보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만을 생각해서 무리하게 분량을 늘렸을지도 모르므로.
남들이 하는 만큼. 남들 보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우리는 사회에 속한 존재이므로 남들을 의식하는 주의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후회 없이 내 갈 길을 걷는 소신이 더 필요함을 느낀다. 아이가 잘하니까 다 시켜본다는 단순한 생각 말고 우리 아이가 지금 못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봐야겠다.
사는 일이 피곤한 것 같지만 대자연과 호흡하듯 아이와,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려 시도한다면 길은 보일 거라 믿는다. 나와 남편, 아이의 대화가 부단히 발전하고 작은 자극에 흔들리기보다 좋은 것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의 섭리 속에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알에서 깨는 작은 생명들처럼 스스로의 길을 자연스레 찾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