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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 Nov 14. 2024

사람이라는 우주

할 수 있는 것은 위로뿐

정신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주는 선생님께 어린 시절의 내가 주로 잠을 잤다는 얘기를 했다.

하다못해 소풍을 가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잠을 잤다는 여섯 살 여자아이.

알록달록한 꽃으로 가득한 화단 앞, 똑같은 복장의 타이즈에 미술학원 원복을 입고 빵모자까지 눌러쓴 여자아이는 카메라 셔터 앞에서 졸린 눈을 겨우 떴다.

눈부신 햇살 속 염색이라도 한 듯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한 하얀 얼굴의 꼬마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던 걸까.

 

선생님은 다큐멘터리 한편을 추천하셨다.

난민 가정 아이들 중 그와 비슷한 종류의 병을 앓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마법이 풀리기 전까지 잠만 자는 병은 우울증에 육체가 반응한 것일지도 몰랐다.

다큐멘터리 속 아이들은 부모가 난민의 처지에 속해있는 상황을 이해했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그저 자는 것을 선택한 거라고 했다.

슬픈 현실이었다.


그저 슬프다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인생의 사건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 사건들 앞에서 우리는 상실을 배운다.

상실 속에서도 생명은 계속 성장을 거듭해 간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입은 먹거나 적절한 대답을 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어떤 것은 그저 그렇게 놔두어도 변해가고 어떤 것은 멈춰 고여있는다.

살아남기 위해 본능에 따라 방어기제는 변해가지만 육체 안의 어린아이는 제자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갈 수 없는 방에 갇혀버린 것처럼 제자리를 맴맴 돌며 그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속 잠자는 병에 걸렸던 아이는 부모가 난민에서 이민자로 승격되고 집안의 분위기가 좋아지자 서서히 잠이 깨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영혼이 돌아온 듯 반응했다.

아이의 몸이 예전처럼 활기차게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웃고 떠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분명 회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리 원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할 수가 없다.

겪어보지 못한 세상의 이치를 어린 나이에 깨닫고 금전으로 환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상실을 헤쳐나갈 방법을 몰랐던 그때의 나에게, 이제 괜찮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너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고 그럴 만큼 귀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되뇌어 말해본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이제 조금씩 잠을 깨워보라고 마음의 문 앞에서 조심스레 속삭여본다.


#슬픈기억에대한위로 #과거의내곁에있는현재의나 #혼자가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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