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군지의 부모입니다.
우리 아이와 저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요.
지난 주말, 우리 아이는 모처럼 유치원 친구들과 놀 기회를 가졌다. 산을 끼고 있는 큰 공원에서 오후 2시 무렵부터 밤 8시 정도까지 즐겁게 뛰어놀았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듯했다. 중간중간 간식을 먹는 순간을 빼고는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제안과 놀이를 반복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순한 성정의 친구들 덕분이기도 했고 아이가 놀이에 항상 목말라있기 때문 같기도 했다.
유아기에 보냈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상담을 갈 때면 '아이가 잘 집중하고 영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 자신에 대한 칭찬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였기에 아이가 영리하다는 말도 그냥 흘려듣곤 했다. 하다못해 아이를 매일 돌봐주시는 이모님도 '아이가 집중력이 남달라요.'라고 말해주셨지만 그마저도 바쁜 생활에 묻혀 잊히곤 했다. 당시 살던 곳은 학군지가 아니었기에 영어유치원 같은 기관은 차로 운전해서 데려다줘야 그나마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사교육은 꿈도 꾸지 않으며 지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들이 우리가 학군지로 이사할 핑계를 만들어주었다.
이사오기 전 아이의 유치원을 알아보았다. 전에 살던 곳은 인구밀도가 낮았고 외곽이었기에 규모가 크고 자연친화적인 유치원이 많았다. 하지만 이사 온 곳은 그런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곳조차 내 눈에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비용도 훨씬 비쌌다. 조금 더 보태서 영어유치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 단지에 사시면서 큰 아이가 직장에 들어간 지금도 영어조기교육을 못 시킨 것이 아쉽다고 말씀하시는 형님의 생각도 내 결정을 한몫 거들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영리한 면모를 아낌없이 발휘해 주었다. 입학하고 한 달도 안 되어 "What do you want for breakfast?"라고 묻는 내 말에 "Bread, milk..." 등등으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는 "Broken, broken."(고장났어) 이라고 말해 아이의 학습능력과 교육의 질에 대한 의심을 날려주었다.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아이들이 지난 주말에 만난 친구들이었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했기에 괜찮은 영어실력을 가진 것이 감사했지만 그만큼 부모들은 엄청난 지출을 했다. 2년 동안 학비만 2400만 원 정도가 나갔으니... 일반 유치원의 두 배정도의 금액이다. 내가 혼자서 영어공부를 체계적으로 시킬 수 있었다면 아낄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 커리큘럼을 혼자서 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 그 2400만 원을 위해 난 돈이 될만한 일을 스스럼없이 찾아서 하며 생활비에 보탰다.
그러면서 내 생활은 계속해서 무너졌다.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더라도 지출이 생긴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생활비는 내가 벌어온 나만의 돈이 아니었다. 자주 그런 말이 떠올랐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하지만 대출을 받아서 학비를 낼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나는 쉬는 방법을 잊어갔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아이가 계획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으면 폭발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어릴 때 친정 엄마는 어려운 형편을 개선하고자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하루를 보내셨다. 낮잠 한번 자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가난했다. 그리고 늘 우리에게 양보했다. 지금의 나처럼 사교육을 많이 시켜주지 못하셨지만 그만큼 공부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으셨다. 모든 건 내가 스스로 결정할 일이었다. 그래서 외롭고 결정이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잘못된 결정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엄마는 '그때 더 낮은 학교라도 네가 좋아하는 전공을 하게 했어야 했어.'라는 말을 해줌으로써 나를 사랑함을 알려주시곤 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내 삶의 경로가 바르지 못하고 슬쩍 꼬인 것이 지금도 속상하다.
그래서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삶에 필요한 기반을 모두 다지고 항상 준비자세로 살길 바란다. 원하는 순간에 앞으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아니 가능하면 일등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다음을 여유롭게 생각하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요즘 그건 그저 나의 희망사항일 뿐임을 느끼고 있다. 성실하고 차분한 아이도 똑같은 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놀고 싶어 하는 마음에 연민도 생긴다. 빠듯하게 짜둔 학원 스케줄을 포기하고 아이를 쉬게 해줘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즐겁게 논 시간만큼 아이는 열심히 숙제를 해야 했다. 학원의 진도와 숙제를 따라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고집을 부렸다. 잠시 들렀던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숙제를 시작하면 몇 시간은 꼼짝없이 계속 문제풀이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아이는 전혀 준비된 자세가 아니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살 달랬다. 그리고 아이가 해온 숙제를 채점하며 건성건성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불같이 화를 내기에 이르렀다.
엄마가 되었으므로 어릴 때의 엄마처럼 나도 희생함이 마땅했다. 가계에 지출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하고 내 것을 아껴서 자식에게 쏟아부어주는 부모가 되어야 했다. 가족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최소한의 돈이라도 벌어 생계에 보태고 아이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보람이 생길 것 같았다.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행복해질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아주 적나라하게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내가 왜 너 때문에 예쁜 옷도 못 사 입고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좋은 곳에도 못 가면서 살아야 해?!!!!'
아이는 펑펑 울었다. 그러면서도 숙제를 놓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오면 불안감이 엄습하니까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으니까 아이는 그제야 집중해서 숙제를 했다. 하지만 내 억울함은 여전히 풀릴 길이 없었다. 남편은 학원의 개수도 줄이고 동선을 짜서 아이 혼자 다니게 하자고 했다. 무엇이든 나가서 할만한 일을 찾아보라고도 했다.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 못하랴. 내 이름이 불리는 곳에서 나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그에 합당한 열매도 따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혼자다. 곁을 지키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매일 목격하는데 우리 아이가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가 않다.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고 최대한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만 든다. 후회할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너 때문에'라는 말을 했다는 게 미안했다. 숙제를 마치고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끝까지 소리를 질렀다. 웅크리고 잠든 모습에 눈물이 났다. 나는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인 걸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어떤 날은 낡은 옷을 걸치고 밥에 김치만 먹어도 아이 곁에 있음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러다 덜컥 아프기라도 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렵고도 두렵다.
답답하지만 계속 고민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생각해 본다. 누구도 내 인생의 답은 알지 못할 테니. 그리고 친정엄마와 나의 인생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 죄책감도 벗어버리고 싶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므로 내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예쁜 옷 입고 좋은 밥 먹고 멋진 곳에 가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어쨌든 입으로 뱉을 정도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답답하기 그지없는 속도일지라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꿈이 부디 이루어지길 마치 남일처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