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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Dec 28. 2022

공간 한쪽의 힘

 혼자 일해서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 같다. 혼자서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보람의 앞면 뒤에는 혼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외로움이 있다.

 일러스트 작업은 주로 아이패드로 해서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시안을 잡아야 하는 일이 아니면 카페가 곧 작업실이 된다.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에서 일하는 자아로 변신하게 하는 곳. 카페에 머무는 동안 작업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종종 담다 보니 일이 마무리된 후 사진첩을 살펴보면 공간에서 보냈던 시간이 자연히 떠오른다.

 ‘이건 여기서 그렸지’, ‘이때 잘 안 풀려서 끙끙거렸었는데’ 하는 작업에 대한 기억부터 ‘이날 사장님이 커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고 티를 주셨었는데’ 같은 다정한 마음을 받았던 순간까지. 새로운 곳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곳으로 걸음이 향하는 탓에 어느새 단골이 되어 ‘작업은 하나인데 추억은 서너 개’라고 노래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니 차곡차곡 쌓인 작업물만큼이나 카페에서 보낸 추억들이 많이 쌓였다. 기꺼이 자신의 공간 한쪽을 내어주신 사장님들 덕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로 살 수 있었다. 따듯했던 커피가 식어가는 줄 모르고 열중할 수 있었던 데는 매일 약속한 시각에 공간을 여닫는 성실한 마음이 있어서였고 그 마음에 기대어 나도 조금씩 성실해질 수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정해진 소속 없이 일하다 보면 가끔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을 달래 주었던 건 매일 같은 시간 공간을 여닫는 성실함과 꾸준함, 커피와 공간에 대한 애정과 철학,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장님들이 계시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나의 취향이 오롯이 담긴 작업실이 생기길 꿈꾸기도 하지만 작업실이 생긴다고 해도 카페를 찾게 될 것 같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잊게 해 준 공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공간 한쪽의 힘으로 하루하루 내 몫의 삶을 살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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