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Jan 06. 2023

웃으며 바라보기

어제는 초등학교 예비소집이 있는 날이었다. 올겨울에는 방학 기간에도 등원하고 있어서 내심 미안한 마음이 컸던 터라 예비소집을 핑계로 첫째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달리 예비소집은 초등학교 입구에 마련된 당직실에서 각종 신청서와 안내문이 들어 있는 서류를 받는 것으로 금세 끝났다. 대신 예비소집만큼 중요했던 책가방을 사는 일에는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했다. 얼마 전에도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가방들을 메 보았지만, 막상 구매하려니 한 번 더 눈으로 보고 싶어 해 다시 찾았다. 평일 오전, 우리처럼 책가방을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메보고 사진으로 담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첫 책가방인 만큼 엄마와 아빠의 의견 대신 무조건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는데 아이는 한참 고민 끝에 보라색 글리터와 리본 장식, 분홍색 곰돌이 키링이 달린 보라색 책가방을 선택했다. 책가방과 세트인 신발주머니 외에 따로 쓸 수 있는 보조 가방까지 있는 제품이었다. 책가방을 결제하고 아이에게 이 가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를 물으니 디자인도 예쁘지만 무게가 가볍고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민트색 가방을 고르지 않은 건 민트색이 너무 여름 느낌이 나는 것 같아서였다니, 사계절에 두루 어울리는 가방을 고르느라 고심했겠구나 싶었다.  


초등학생이 된다는 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 시간을 훌쩍 거슬러 나의 1학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가 초등학교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는 키가 크고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한 살 많은 반에서 보냈는데, 초등학교는 제 나이에 입학해 나를 언니라고 불렀던 유치원 동생들이 친구가 되는 바람에 서로가 혼란스러웠다. 전학 가고 싶다는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때도 그때였으니…. 어떤 날은 얼른 초등학생이 되길 바라고 어떤 날은 되고 싶지 않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며 아이의 몸 구석구석에 뭉쳐졌을 긴장과 걱정, 불안이 첫 책가방을 고른 기억으로 말랑말랑하게 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교 시간이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닐 때보다 훨씬 빨라서 아이 돌봄을 위해 부모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가장 많을 때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고 한다.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보다 엄마인 내가 돌봄과 일 사이를 균형 있게 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서는 이유다.


며칠 전 지인이 텀블벅 펀딩을 통해 ‘아이가 쓰고 엄마가 만든 시집 <난 할 수 있어요>’를 펴냈다. 시집에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어린이 시인이 5살 때부터 쓴 시들이 수록돼 있는데 그동안 쓴 시 중 1/3만 넣은 거라고 하니 아이의 삶이 곧 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꽃을 / 웃으며 바라보면 / 꽃도 웃는다

내가 꽃에게 / ‘안녕’하고 인사하면 / 꽃도 인사한다

- 배지윤, <난 할 수 있어요>’


그중 ‘꽃’이라는 시를 읽으며 ‘꽃’이라는 단어에 ‘아이’와 ‘나’를 차례로 넣어 보았다. ‘내가 아이를 웃으며 바라보면 아이도 웃는다’, ‘내가 나를 웃으며 바라보면 나도 웃는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작은 존재가 내 가슴께까지 자라 이제는 자기만의 정원에 씨앗을 심을 나이가 되었다. 아이의 정원에는 어떤 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라게 될까. 나의 정원과 아이의 정원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내가 웃으며 바라보면 아이도 웃게 될 것이다. 믿음과 지지, 사랑이 더욱 필요해지는 순간이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과의 캠핑에서 얻은 교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