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앤라라 Dec 09. 2021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며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에게

“마음이 변한 건 아니야.”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저 행동이 변했다는 의미일까. 

행동이 변했다는 건 그도 인정하는 걸까. 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이나 이해의 의미는 아니었고, 그저 너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구나 생각한 것뿐이다. 

우리 관계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아무리 되짚어도 알 수가 없어서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과 함께 머리 속에 복잡하게 뒤엉킨 상념들이 떨쳐지기를 바라면서. 


J와의 연애는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졌다. 하루 한 번의 연락조차 어렵다면, 이런 연애를 왜 지속해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이어 나갔던 이유는 내 사랑의 크기가 그의 무관심보다 컸기 때문이다. 

또, 우습게도 J는 만나는 순간에는 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직은 사랑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헤어지지 못하고 한번 더, 한번 더 믿어보자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지속할수록 그는 더 뻣뻣해졌고, 나는 더 사랑을 구걸했다. 

연락을 기다리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멀찍이 뒀다가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연락을 기다렸다. 늘 먼저 연락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며 참다가도 사랑에 자존심이 웬 말이냐며 스스로 타협한 채 연락을 건넸다. 오래 고민하다 보낸 문자에 그는 단답형의 답장을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보내왔다. 


주말이 올 때면 헛헛함이 더해갔다. 그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을까 기다리다 말이 없어 물어보면 그에게는 늘 갖가지 사정이 존재했다. 

그에게 벌어지는 온갖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을 이해하고 또 이해해야 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스스로 너무 옹졸한 사람처럼 비춰질까봐 화조차 내지 못한 채 괜찮은 척 행동했다. 

잘못 내딛은 한 걸음으로 수렁에 빠져 스스로 나오지도 더 깊이 들어가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 했다. 어두웠지만 더 어두워지는 것이 두려워서 섣불리 발을 내딛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가’, ‘내가 뭘 잘못하지는 않았나’ 생각하며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으니, 그에게 이유를 물었어야 했는데 오랫동안 내가 변하면 이 관계가 괜찮아질 거라 착각한 채 스스로를 괴롭혔다. 


모든 이별이 쉽지 않지만, 변해가는 그를 온전히 느끼며 이별을 향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에게 힘겹게 변해가는 이유를 물으면 그는 너무나 쉽게 ‘일’을 핑계 삼았다.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에게는 너무 좋은 핑계거리였고, 나에게는 화조차 낼 수 없는 핑계거리였다. 

차라리 마음이 식었다거나 더 좋은 사람이 생겼다는 이유를 댔더라면 돌아서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을까.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은 그는 이별의 이유를 ‘우리’가 아닌 외부의 요인에서 찾음으로써 사랑을 먼저 끝냈다는 죄책감에서 쉬이 벗어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별 후에도 나는 혼자 이별하지 못했다. 분명 지쳐서 헤어짐을 선택했는데, 그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오래 방황했다. 

변해가는 그를 지켜보면서도 내 사랑이 식지 않아서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괜찮다고, 바쁜 너를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좋았던 마음이 식었듯이 식은 마음도 다시 좋아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붙잡았다. 


이별은 끝을 고하는 행위인데, 이별에도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사랑의 속도가 다르듯 이별의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얽혀서 만들어낸 관계이기에 한 사람이 뚝 끊어낸다고 해서 관계가 말끔히 종료되는 건 아니다. 

이별을 말한 사람이 등을 돌릴 때 남은 사람은 여전히 돌아선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있다. 

혹여나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 뒤를 돌아봤을 때 나까지 등을 돌리고 있으면 그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봐 한참동안 미련하게 그 자리를 지켜낸다. 

실낱 같은 희망을 움켜쥐고 어리석게도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있는다. 



그때 내가 그를 잡았던 건 사랑이었을까. 

사랑이 지난 자리에서 한때의 사랑을 떠올리면 언제나 좋았던 추억만 생각나서 그때 내 감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저 익숙해진 관계를 떠나 혼자되는 것이 두려웠거나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일 뿐. 


그럼 그는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그의 감정을 감히 내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건 사랑은 아닐 거다. 애인이 늘 일순위일 수는 없지만 사랑하면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내가 함께하는 시간도, 함께하지 않는 시간도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그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묻게 된다. 그의 일상이 궁금하고, 그의 마음 상태가 궁금하다. 

물론 30대의 연애는 20대의 연애보다 무딜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본질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환갑이 넘은 엄마가 외출을 하면 아빠는 엄마 올 시간에 지하철역으로 데리러 나간다. 40년 동안 한결같았다.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게 아빠만의 사랑방식이다. 

사랑의 모습이나 표현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상대가 궁금하지 않은 연애는 진짜 사랑은 아니다. 


연락이 오지 않는 그를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는 연애를 하고 있다면 한번쯤 그 관계를 돌이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쩌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그리고 당신에게 반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어딘가 분명 존재한다고. 

그러니, 나를 궁금해하고 나의 행복을 빌어줄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부디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연애를 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