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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Mar 30. 2021

무제


침대 위에 누워 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그리 높지도 않은 코 앞까지 천장이 내려앉는다, 아찔하게


밖으로 나오니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제멋대로 살아 움직인다

'죽어있어, 제발 죽어있어!' 절박한 마음은 씨알도 안 먹힌다


골목을 걷다 내 뒤를 호시탐탐 노리는 맹수의 으르렁 소리를 듣는다

몇 발자국 앞 큰길을 두고 잠시 서서 몸뚱이를 바짝 남의 집 담벼락에 붙인다


오르막 중턱에 있는 동네 카페 앞에 다다른다

한 층이 채 되지 않는 낮은 계단의 난간을 붙잡으며 그 차가움이 미워진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제기랄, 오늘도 머리 위에서 얄팍한 종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늘 앉는 자리에서 늘 마시던 커피를 마신다

그 뜨거운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니 입천장이 다 데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바깥세상의 빛을 바라보며 안도하다 문득

전보다 환해진 백열등을 노려보다 눈이 시려 감아버린다


어젯밤 죽어버린 가난한 시인에게 온갖 것들이 말을 건다

왜 오늘따라 커피가 유난히 더 쓸까, 미간에 힘을 준다.


죽어 있는 것들이 부러워 주위를 둘러본다

맙소사, 카페 안에 장식으로 둔 나무의 잎사귀마저 온풍기 바람에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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