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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Mar 24. 2021

어머니가 아이돌을 부러워합니다

당신의 젊음을 갉아먹고 큰 나

#1

 요즘 들어 부쩍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모님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각자의 일상을 마친 후에 다시 모여 저녁 밥상머리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부모님은 늘 저녁 식사 후에 소파에 앉아 TV를 보신다. 거의 대부분의 방송은 요즘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리는 '트롯'관련 방송들이다. 가끔 거실을 지나가다 부모님이 시청하고 계신 TV 화면을 보다 보면, 예전과는 다르게 방송 중에 뜬금없이 광고로 넘어간다. 이게 무슨 경우일까 싶다가도, 이미 익숙하신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부모님을 보면 방송이 변한 지 꽤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고등학교 3학년일 무렵부터 지금까지 나는 TV를 보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의 20대 시절엔 TV가 없었다. 아마, 유튜브와 각종 OTT 플랫폼이 그 역할을 대체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분명, 어렸을 때에는 매 시간마다 챙겨봐야 할 만화, 드라마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티브이를 옆에 끼고 살았었는데 어느새 그 모든 당연한 장면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2

 어젯밤, 거실을 지나다가 문득 여느 때처럼 TV 앞에서 한참 집중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깔깔 웃지 않으시고, 마치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계셨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렇게 집중하시는 걸까? 왕년에 잘 나갔던 연예인이라도 나온 걸까?'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 속에서는 젊은 남자 아이돌 가수 여러 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림잡아 예닐곱 명의 젊은 남자들이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소위 말하는 '칼'군무를 추고 있었다. 쉰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20대 남자들의 춤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바라보고 계셨다.


 별로 이상해 보일 것 없는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나의 어머니는 그 흔한 아이돌 그룹의 이름 하나도 모르신다. 그건 확실했다. 가끔 TV를 볼 때마다 다들 곱상하고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왜 그렇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계셨던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저 아이돌 가수들 좋아해요?


그러자 어머니는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아니, 그냥 부러워서...
자기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뭘 해도 폼이 나는 게,
열정을 담아 춤을 추는 저 젊음이 부러워.


 어머니의 마음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 질문을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어머니는 그들의 젊음이 부러우셨던 것이다. 그들의 젊음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잠시 동안이라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그들의 열정에 빠져계셨던 것이다. 쉰이 훌쩍 넘어버린 어머니가 20대 남자 아이돌들의 젊음을 부러워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모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3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음을 그리워한다는 사실, 모든 걸 가진 사람도 결코 다시 거머쥘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젊음'이라는 것을 막연히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의 입에서 젊음이 부럽다는 말을 듣는 건 정말 불편했다. 그게 옳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녀의 젊음을 갉아먹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젊음을 앗아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젊음이 부럽다는 말을 하실 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가 하얘진 채로 어머니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버렸다. 어머니의 그 부러움이 내게는 큰 부담과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마치,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내게 그런 말은커녕,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으리란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당신의 젊음을 갉아먹으며 자라는 동안, 어떤 기쁨을 드렸을까 생각할수록 어째 점점 내가 못나 보이는 것 같다. 조금은 더 살가운 아들이었다면, 조금 더 자주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면, 조금이라도 어머니에게 잘해드렸다면... 나는 당신의 늙음 앞에 지금보다는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합리화하며 어머니에게 조금은 살가운 아들이 되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당신의 아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게 되신다면,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괜찮다고, 너는 내 젊음을 앗아가지 않았다고 다독거려 주실 분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나는 당신에게 못난 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서 인 듯하다. 


 어머니, 앞으로는 당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입고 싶은 옷을 사드리고, 가고 싶은 곳에 함께 가는 그런 아들이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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