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cea Jun 11. 2021

아주 사적인 편지

첫 편지

OO 님께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는 게 낯설어질 정도로 오랜만이라 OO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몇 번을 곱씹으며 읽었답니다. 마치 어렸을 적 외국인 친구와 펜팔을 하던 추억을 되살리는 것 같은 설렘을 느낍니다.


오늘 저는 낯선 하루를 보냈답니다. 우산을 쓰고 걷다가 문득 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빗물을 담아보기도 하고, 처음 가보는 작은 동네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웬 고양이와 눈이 마주쳐 한참을 눈싸움을 하기도 했답니다.


요즘 유난히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소하지만 ‘처음’해보는 것들을 기록하고 그걸 글감 삼아 글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지요.


손에 빗물을 담으면 생각보다 양이 적다는 것, 처음 가본 동네 카페에는 내 취향의 올드 팝이 흘러나온다는 것, 길에서 본 고양이는 눈싸움 강자라는 사실까지 오늘 하루는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낯섦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마음에 좋은 것들을 채워 넣으니,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 싫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처럼 오늘은 종일 싫은 게 하나도 없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OO 님의 ‘오히려 웃음소리나 빼곡하게 채운 글씨 같은 것들이, 때로는 날씨가 우울에서 사람을 길어 올리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빗물이 세상의 모든 때 묻은 것을 씻겨주듯, 오늘 내린 봄비가 OO 님의 지쳐있음, 불안함 그리고 울적함을 조금은 씻겨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편지 감사해요.

정훈 드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