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배운 것 [6]
군대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피부와 건강도, 관계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는 만큼 나아진다는 것을, 저절로 좋아지는 건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냥 두면 나빠지기만 할 뿐이지요.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잘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 귀찮거나 다른 게 바쁘다는 이유로 습관화하지 않았던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정말 중요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깨달음은, 말하자면 제 발등을 찍으면서 배운 것입니다. 군입대 전까지의 저는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생활이나 자기관리, 경제관념 같은 부분에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어떻게 해야 여드름이 나지 않는지, 여드름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그 흔한 여드름 패치조차 붙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자취방의 설거지와 빨래, 분리수거는 밀리는 게 당연했고 그런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단정하고 안정된 마음이 생겨날 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거나,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지 몰랐던 것이지요. 이제서야 저는,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가꾸는 게 자기관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군대에 와서 처음으로 남자 뷰티 유튜버들을 보면서 애프터쉐이브라는 것도 사보고, 면도기 소독제도 구입해 쓰고 있습니다. 거기에 애크논과 노스카나 연고를 꾸준히 바르고, 올리브영에서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잘 때나 운동 나갈 때 사용하기 위해 무려 파우치를 준비해 다니고, 외출할 때 기초 선크림이나 쿠션 정도를 바르기도 합니다. 저를 아는 친구들은 기함을 할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입대 전과 비교하면 피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체중도 5키로 이상 감량했고, 자취방을 구하자마자 체중계를 구입했습니다. 수시로 확인하지 않으면 나빠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에는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살게 될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드는 방이어서, 가구를 들이고 짐을 풀면서 정을 붙이고 있습니다. 입주한 첫 일주일간 저는 거의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방 전체를 쓸고 닦고 정리하는데 십오 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금방 하는 걸 왜 그동안은 할 생각을 못 했을까, 이렇게 간단하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일을 왜 그동안 안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요즘 저는 청소기를 돌리고 휴지통을 비우고 싱크대를 깨끗하게 닦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청소를 마친 뒤 좋아하는 인센스를 피우고 음악을 듣는, 새삼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여유를 말입니다. 이 또한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나를 위하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다른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전역을 앞두고 있어 무엇이든 재미있는 ‘전역 버프’의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전역 이후 살게 될 방에서는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집을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휴식과 집중이 모두 가능한 곳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하는 만큼 나아지는 것을 배웠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올해 느낀 깨달음을 완전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내년의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비트윈', ‘타다’ 등의 서비스를 런칭한 VCNC 박재욱 대표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매년 올해의 배움 10가지를 정리하여 올리시던 것에서 영감을 얻어, 2021년부터 2년째 진행하고 있는 연말정산입니다. 한 해 동안 배운 10가지를 선정해 정리하고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