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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Feb 06. 2024

아파트가 그리운 삶

많은 한국 사람들이 주택보다는 아파트에 살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인생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보냈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부대 안에 있는 관사에서 3년 정도 살았던 것이, 한국에서의 유일한 주택 생활이었다. 베트남에서도 멋모르고 주택을 임대해 살아 본 적이 있지만, 넓은 거 말고는 단 한 개의 장점도 찾을 수가 없어 계약기간을 다 못 채운 채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크기는 훨씬 작았어도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간다 느낄 정도로 나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이토록 아파트에 사는 게 익숙한 사람인데 미국 시골에서는 내가 고를 수 있는 집의 형태가 다양하지 않다. 물론 여기에도 아파트라는 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의 것과 다르게 엘리베이터 없는 2~3층 짜리 단층 건물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저도 월세가 너무 올라 우리는 대출을 받아 집 구매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이사까지 남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 본래 살던 동네에서 골랐고, 이 동네에는 주택 외에 다른 집 후보는 없었다. 그렇게 실로 오랜만에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전혀 주택이 나쁘다고 생각 못 했다. 한국에서 도시 생활을 할 때는 잔디밭을 넓게 쓸 수 있는 전원주택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도 그런 집이 멋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지금 살게 된 집은 그저 우리에게 맞는 작고 귀여운 사이즈의 주택이다. 뜰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 보여줄 만큼 예쁘게 정돈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그림 같은 미국 주택은 가격도 영화 같아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편과 함께 구매한 첫 집이니 애정을 갖고 이 집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주택으로 이사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아, 아파트 생활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집 문을 열면 바로 밖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청량한 새소리를 들을 때는 이 시골 주택에 살아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딱 그때뿐이다. 새들이 주변에 많다는 건 새 똥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고, 집에 뜰이 있다는 건 그만큼 각종 곤충과 벌레와의 싸움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벌레들이 들어오기 쉬운 주택인데, 겨울이 짧은 이 남쪽 지역에서는 남다른 크기의 벌레들과 싸워야 하는 기간도 길다. 그리고 잔디와 잡초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지 온도가 높을 때는 남편의 수염보다도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분명 땀 뻘뻘 흘리며 잡초를 깎았는데 뒤돌아서면 다시 자라 있는 느낌이다. 밤에는 천산갑이라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 애써 정돈해 둔 뜰에 내 엉덩이만 한 구멍을 파 놓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이 잔디밭을 잘 이용하면 좋을 테지만 겨울에는 추워서 밖에서 할 게 없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벌레와 싸우기 싫어 굳이 활용할 일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밖에서 아이를 놀게 할 수 있어 좋겠다고 하겠지만 나는 아직 아이도 없는 데다 집에서는 모름지기 누워있어야 한다는 주의라 내게 있어 잔디밭은 그저 주기적으로 깎아야 하는 청소 구역이다. 


전 주인이 이사 가면서 야외용 소파를 두고 갔는데, 날이 좋을 때는 저기 앉아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야외에 있는 만큼 조금만 지나면 소파 위에 눈에 띄게 먼지가 쌓여 그저 전시용 소파가 되었다. 가끔 옷이 더러워지는 걸 각오하고 앉아보려 해도 말벌들이 날아다니는 통에 소리를 지르며 실내로 뛰어들어오기 일쑤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침수 걱정이 되고, 태풍이 불 때는 집의 일부가 부서지기도 한다. 실제 얼마 전 강풍이 불어 나무로 만들어 둔 뒷문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물론 다 직접 수리해야 한다. 집’ 안’ 일 말고도 집’ 밖’ 일이 많아지니 집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과 필요한 도구들도 늘어서 자연스레 짐이 많아졌다. 왜들 그렇게 미국 사람들 차고에는 뭐가 그득그득 쌓여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집청소와 수리에 계절마다 필요한 것들이 또 다 다르다.  


아파트에 살면 실내만 신경 쓰면 되고, 집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관리비는 내지만 집에 관련해서는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어 하등 쓸모없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고층 아파트에 살 때는 벌레 스트레스도 없었고 날씨가 아무리 험해도 창문만 닫으면 나만의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졌는데, 주택에 살며 땅에 붙어 산다는 게 이리 험할 줄은 몰랐다. 아빠가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 할 때마다 엄마가 거품 물고 말렸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내 남편은 시골 남자라 귀찮아하면서도 집에 필요한 일들을 잘 해내는 편인데, 못 하나 벽에 바로 박지 못하는 아빠가 전원생활을 시작하면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을 거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층간 소음을 걱정하게 되거나, 텃밭 가꾸기 같은 일에 취미가 생기면 이런 주택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실내에 쳐 박혀 조용히 지내는 중이라 주택의 장점을 누리기보다는 아파트 생활을 좀 더 그리워하고 있는 편이다. 나중에 아파트 생각이 전혀 안 날 때쯤 그때서야 내가 비로소 시골 사람 다 되었다고 자랑스레 얘기할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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