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영어를 잘 못 하는데, 어떤 이들은 영어가 아니라고 까지 말할 정도로 심한 사투리를 쓰는 미국 지역에 살다 보니, 쇼핑할 때 쓰는 간단한 의사소통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집에서 나름 영어 책을 본다고는 하지만 혼자 하다 보니 한계가 있어 고민하던 도중, 자주 가는 카페 게시판에 영어 과외를 해 준다는 현직 초등 교사 광고글을 보게 되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 그녀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영어 과외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 수업은 경험이 적어서인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저 영어 원어민이고, 교사이다 보니 본인이 할 수 있는 부업으로 영어 과외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동네에 친구 한 명 없는 내게, 일주일에 한 번 그녀를 만나는 시간은 일종의 기분 전환이 되는 나들이 같은 거라 큰 불평 없이 수업을 이어나갔다. 선생님은 손주도 있는 50대 중반의 나이로, 남편의 외도로 이혼 후 상담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데이트 상대를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데이트 상대에게 바람맞았다며 내게 같이 파티에 가겠냐고 제안해 왔다. 마디그라 볼 (Mardi Gras Ball) 파티에 같이 갈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년 2월이 되면 ‘뉴올리언스’와 ‘모빌’ 같은 지역에서 ‘마디그라’라는 남부 최대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1월 말부터 3월 초까지 계속되고 2월이 가장 절정기인 축제다. 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크기의 큰 조형물을 만들어 그걸 타고 행진하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초콜릿, 사탕 같은 간식거리나 플라스틱 싸구려 목걸이 비즈 같은 걸 던진다. 매년 뉴욕에서 추수감사절 (땡스기빙데이)에 거리에서 하는 행진과 거의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1년에 걸쳐 만들어진, 테마파크 저리 가라 하는 엄청난 크기의 조형물들이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장관이라 각 지역에서 이걸 보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매일 행진하는 건 아니고 주로 2월 금, 토, 일에 행진이 많이 몰려 있다.
그런데 행진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에는 이 마디그라를 주최하는 오래된 몇몇 ‘크루’들이 있는데, 이들은 축제 전 그들만의 파티를 연다. 단순한 홈파티 이런 게 아니라 콘서트 홀이나 시민 회관을 빌려 전통 의상을 입고 아주 본격적으로 옛날 미국식 격식차린 파티를 여는 것이다. 어떤 크루 파티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크루 멤버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들에게 초대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파티들이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 연고 없는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나와 남편이 축제 크루 멤버 중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고, 나는 그런 파티가 있다는 것조차 잘 몰랐다. 나의 영어 선생님은 크루 멤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지인이 지역 크루 중 제일 큰 모임의 멤버였고 그들로부터 파티 초대장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얼마 전 소개팅을 한 남자와 같이 가려고 받아둔 티켓이었지만, 갑자기 그에게 바람맞은 탓에 같이 갈 파트너가 없어졌고 마침 시간이 남아도는 내가 눈에 띈 것이다. 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파티라는 말에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파티에 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드레스였다. 남자들은 턱시도, 여자들은 롱 드레스를 입지 않으면 초대 티켓이 있어도 입장이 거부되는 게 그 파티였다. 짧은 칵테일 드레스면 모를까 내가 평소 파티용 롱 드레스를 입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당연히 그런 옷은 없었다. 문제는 그 파티까지 일주일도 채 안 남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 안에 나는 드레스 쇼핑을 하고 수선을 끝내야 했다.
온라인 쇼핑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직접 옷가게를 찾아 나섰다. 기적적으로 나한테 맞는 드레스 전문 가게를 찾아 옷을 구매하고, 작은 키에 맞춰 웃돈을 더 주고 파티 날짜에 맞춰 수선까지 맡겼다. 드레스에 수선비까지 얼추 몇십만이 깨졌다. 갑작스러운 자금 출혈에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평생 한 번 가 볼까 말까 한 파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미용실까지 예약해서 헤어, 메이크업, 네일까지 다 받고 갔지만 나는 차마 그것까지는 못 하겠어서 집에서 직접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했다.
파티는 약 6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시민 회관에서 시작되었다. 주차할 자리가 부족해 그냥 풀밭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섰다. 파티 시작 시간이 되자 주최 크루들이 유니폼을 입고 파트너와 함께 음악에 맞춰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크루 회장님의 연설 후 본격인 파티가 이어졌다. 본격적이라는 것은 입장 퍼포먼스가 있던 2층을 떠나 1층으로 내려가, 각 방마다 가득한 출장 뷔페 요리를 먹는 것이었고, 올 해의 ‘퀸’과 ‘킹’을 만나 사진 찍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뷔페 음식을 비우면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주최 측에서 부른 전문 밴드와 공연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춤추는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나야 운 좋게 본래 있던 티켓을 받아 온 거라 무료로 즐겼지만, 본래 이 파티 티켓은 1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지인도 있어야 되고 돈도 많이 드는 것이 이런 파티인 것 같다. 처음에는 티켓 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음식 퀄리티와 규모를 보니 그 금액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공연에서는 모르는 노래인데도 많은 사람들과 같이 따라 부르며 춤출 수 있는 분위기가 너무 신나서, 뇌에서 도파민이 가득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밤에 위험한 나라라 웬만하면 여기서 밤 8시 이후에 밖에 다닌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날은 새벽 2시까지 공연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갔다. 딱히 재미있는 일이 없는 미국 시골에서, 오래간만에 몸도 마음도 20대로 돌아간 느낌이라 나한테는 근래 가장 신나는 일이었다.
파티 이후 당연히 그 롱 드레스는 아주 곱게 모셔서 옷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매일 운동복 아니면 파자마만 입는 일상이라, 내 옷장에 이런 파티용 드레스가 모셔서 있는 게 낯설기는 하지만 안 입더라도 팔지 않고 당분간 그냥 옷장에 두려고 한다. 이 옷을 입었던 그날의 내가 너무 즐거웠고, 또 이런 옷을 입을 일을 만들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될 것 같기도 해서이다. 아니면 그저 일종의 저장벽으로 갖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미국으로 이사 온 후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았는데 가끔 이곳에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이런 이벤트가 다른 힘든 날들을 잘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