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봇 Mar 01. 2024

한탕을 노리기 위해 바다로 간다

할 게 없는 미국 시골에서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남편은 별의별 물건들을 사들였다. 사기만 사고 전부 길게 하지 못하는 탓에 집에 물건만 쌓여가는데, 이번에도 마트 쇼핑을 하다가 이상한 물건을 들고 왔다. 기다란 막대기 끝에 전자 기기 같은 게 붙어 있는 모양새가 꼭 바닥을 닦는 대걸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이걸로 공돈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두 개를 가져가 계산했다. 그리고는 그 길로 곧바로 바닷가로 향했다. 우리 동네는 미국 남부 바닷가 쪽이라 따뜻한 날씨에, 2월만 돼도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고 심하면 모기가 눈앞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아직 수영을 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낮에는 온도가 20도 넘게 올라갈 때도 있어, 양말 벗고 모래사장을 걷기에는 충분하다. 해변가에 도착해 마트에서 산 걸 뜯은 남편은 장비를 모래사장 위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가 산 건 바로 금속 탐지기였다. 


금속 탐지기 같은 건 일 때문에 특정 전문가들이나 쓰는 건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는 마트에서 굉장히 손쉽게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기능에 따라 금액도 천차만별이지만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쓰는 탐지기는 5만 원 이내로 구매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내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를 빼내 소리가 제대로 나는 지 확인해 보더니, 이걸로 사람들이 떨구고 간 반지를 찾아 꽤 적지 않은 돈을 버는 유튜버들을 봤다며 우리도 한몫 챙겨보자고 했다. 무제한적인 유튜브 시청이 이렇게 해롭다. 그렇지만 나도 이 바닷가가 휴양철이 되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곳이라는 걸 알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모래 위로 장비를 갖다 대며 기계 반응을 살폈다. 백사장을 걷거나 바다 풍경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바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땅만 쳐다보며 느릿느릿 걷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으며, 특히 어린애들은 금속 탐지기가 재미있어 보이는지 뭘 하고 있냐고 따라다니며 말을 붙였다. 


생각보다 무거운 장비 때문에 슬슬 팔뚝이 아파올 때쯤 ‘삐비빅’ 드디어 무언가 신호에 잡혔다. 장비를 모래 바닥에 찰싹 붙이고 소리가 들리는 구역을 찾아 열심히 손으로 파냈다. 다행히 트렁크 안에 빨간 코팅 장갑이 있어 맨손으로 팔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갖고 있는 금속 탐지기가 세밀한 부분까지 알려주는 고기능 기계는 아니어서 소리가 나는 범위 전부를 뭐가 나올 때까지 파내야 하니 여긴 힘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흙을 파서 찾아낸 것은 알루미늄 병뚜껑이었다. 이 얼마나 허무한지고. 두더지에 빙의해서 파낸 것에 비해 수확이 별로라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기에 준비해 간 쓰레기봉투에 병뚜껑을 넣었다. 무조건 쓰레기도 나올 거라 생각해 쓰레기용 비닐, 보물용 비닐봉지 이렇게 두 개를 옆구리에 찬 상태였다. 그래도 한 번 찾아봤으니 요령이 생겼다 생각해, 더 열심히 모래사장을 뒤졌다. 남편은 어디서 버려진 어린이용 미니 삽까지 주워 와 그걸로 있는 힘껏 땅을 파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흙을 파 본 게 8살 때로 기억하는 데 이렇게 어른이 돼서 남의 나라에서 땅 파고 있는 내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몇 차례 땅을 파고 나니 내 비닐 주머니에 쌓이는 것들이 있었다. 캔 음료 병따개, 녹슨 못, 무언가에 쓰이다 남은 듯한 건축 자재 등 도무지 바닷가에 묻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 한 기이한 물건들도 나왔다. 눈을 번뜩이게 하는 것들도 발견됐다. 


작고 소중한 동전들이었다. 주로 1센트, 5센트짜리였다. 몇 개 안 되지만 쓸모없는 쇳덩이만 찾다가 진짜 쓸 수 있는 동전이 나오니 환호가 나왔다. 남편도 수확이 있었는데 바로 반지였다. 그런데 금이나 은이 아닌 흔한 텅스텐 재질의 반지였기에 이걸 판매한다고 해도 거의 배송비와 비슷한 수준의 값어치라 사실 대단한 수확이라 할 만한 건 없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쓰레기용 봉투는 아주 풍성해서 보물용 봉투와 대조되는 부피를 자랑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금속 탐지기로 한 건 그냥 바닷가 청소였다. 


유튜버들처럼 바다에서 다이아를 건질 거라는 기대까지는 안 했어도 그래도 혹시 은반지 하나 정도는 모래 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했는데 실제로 내가 하루 종일 한 건 쓰레기 청소였다. 나로 인해 말끔해진 해변가를 보니 뿌듯함보다는 씁쓸함이 배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기계 하나로 해변가 전체가 내 놀이터가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 당분간은 그냥 바다 쓰레기 열심히 치운다고 생각하고 계속 다녀봐야겠다. 마치 복권처럼 언젠가 그 보상 비슷한 거 하나라도 건지는 행운을 기대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요일에 할 게 없는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