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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Apr 03. 2024

우리의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미국인 시부모님

결혼 전, 남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점은 남편과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성인인 남편이 아버지와 아주 유연하고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고 나와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도 부모님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서로 무뚝뚝함이 주를 이루는 터라 살가운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문제로 아버지와는 떨어져 살았고, 아빠도 가족 부양에 더 집중하기로 하며 양육 문제는 엄마가 도맡아 왔기 때문에 아빠와는 늘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이미 이런 거리감 있는 가족관계가 익숙해서 인지, 남편과 시아버지의 관계가 좋게는 보였지만 부러운 건 아니었다. 그저 미국과 한국의 문화차이, 부모님의 성향 차이가 꽤 크구나라고 생각했다. 


처음 결혼 후 시부모님 근처에 살 때는 시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꽤 많았다. 차로 10분 거리라 자주 찾아오시기도 하고, 나도 한국 음식을 만들거나 하면 음식을 들고 종종 찾아갔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불러내서 다 같이 외식을 하거나 밥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 우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게 되니 이번에는 전화를 자주 하기 시작하셨다. 일주일에 아무리 적어도 한 번, 많으면 세 번 정도 되었고, 한 번 통화가 시작되면 한 시간은 거뜬히 넘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시아버지는 남편에게 더 자주 전화하는데, 남편이 재택근무자라 웬만하면 통화가 잘 된다는 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실 매일매일 새로운 일상을 사는 게 아닌데, 그렇게 자주, 또 오래 통화할 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매일 같이 보는 친구들이랑 전화로도, 만나도 수다 떨 거리가 넘치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는 중학생이었다. 나뭇잎만 떨어져도 까르르하던 시기가 애초에 있었는지 모를 성인 남자 두 명이 그렇게 긴 시간 무슨 얘기를 나누나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중요한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면, 미국 사는 딸내미한테 문장 한 통 안 하는 사람이라 나한테는 절친보다도 더한 것 같은 남편과 시아버지의 길고 긴 통화가 늘 신세계였다. 무슨 얘기를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시답지 않은 일상 얘기를 한단다. 최근에 본 영화나 드라마, 이웃집 얘기, 일 얘기 같은 평범한 이야깃거리 말이다. 


어느 날 명절에 우리가 시가를 방문했을 때, 시부모님은 내게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자주 연락하는 지를 물었다. 우리 부모님 특성상, 가족이라도 건강과 안전에 관한 걸 제외하고 나머지는 개인 사생활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 내가 자식이어도 당신들의 개인 일정을 포함해, 해외여행을  가도 굳이 내게 알리지 않는 분들이다. 심지어 내가 베트남에 살 때는, 친구분들과 베트남 여행을 왔는데도 연락하지 않으셨다. 내가 종종 부모님의 친구분들이나 일정에 대해 궁금해하면, 뭘 그리 꼬치꼬치 묻냐며 사적인 일을 자식과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이걸 시부모님께 말씀드리며, 뭔 일 있는 게 아니고는 저희 엄마도 저한테 전화 한 통 잘 안 한다라고 하자, 두 분은 너무 놀라셨다. 내 얘기만 듣고는 우리 부모님은 내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 안위와 생활을 걱정하고 신경 쓰는 건 맞지만, 우리 부모님은 친구와 나눌 얘기, 자식과 나눌 얘기를 구분하시는 분들이고, 시부모님은 친구가 자식이고, 자식이 친구도 될 수 있다고 여기는 분들이라 여기서 차이가 생긴 것 같다. 


시부모님은 우리는 너희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고 알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라, 늘 내가 어디를 가는지, 무얼 했는지, 어땠는지 많은 걸 물으신다. 물론 시부모님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달라진 부모님과의 관계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가족들과 전혀 공유가 없던 SNS 사진을 비롯해서, 내가 한국어로 쓰는 이런 글의 내용까지 전부 알고 싶어 하셔서 당황스러웠다. 그분들에게는 그것이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지만, 이런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나의 모든 개인적인 영역까지 홀딱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현재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여전히 지대한 시부모님의 관심이 낯설 때가 있다. 같은 문화권이라도 결혼하고 새 가족이 된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데,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다른 성격을 가진 부모님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어려운 건 당연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적응해 나가며 ‘미국인 시부모님 앞에서의 나’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하다. 반대로 남편은 전화를 해도 늘 할 말만 하고 금방 끊는 우리 부모님 스타일이 재미있다며 깔깔댄다. 남편과 나도 참 다르지만, 어떻게 이리도 다른 집 사람들끼리 만나서 맺어졌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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