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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Oct 22. 2024

지박령이 되어 버린 미국 남부 사람들

미국 남부 지역에서만 살아본 나는 당연히 미국에서 사귄 지인들 90% 이상이 남부 사람들이다. 서부나 동부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 남부, 그것도 시골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특징을 딱 하나만 얘기하자면 나는 ‘지박령(地縛霊)이 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겪어온 남부 시골 사람들, 특히 아주 오래전부터 가족들이 한 지역에 정착해 주로 그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 보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는 성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 마음에 안 들어도, 다른 지역으로 가는 변화가 두려워서 어떻게든 계속 같은 곳에 있으려 하고, 심지어 자신의 자녀나 가족들이 다른 타 지역으로 가는 것도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넓고 넓은 미국 땅 어느 곳에든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내가 살아온 이 지역 외에 다른 곳은 두렵고 낯선 곳이다. 국내 여행도 잘 안 하니 해외여행은 이곳에서 꽤 생소한 단어다. 


미국인들은 다 독립적일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남부 사람들은 독립성과는 거리도 있어 보인다. 일상을 보내는 동네가 아니고서는, 혼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안 통하는 해외 지역이 아닌데도 꼭 가야 하는 응급 상황이 아니면 타 지역에 혼자 가는 걸 두려워해서 가고 싶어도 못 가거나 아니면 같이 가자고 연락이 온다. 음식 또한 먹어본 음식이 아니면 잘 선택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편식이 심하다는 건 본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낯선 외국 음식이 아니더라도 미국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일’이나 ‘가지’ 같은 음식도 먹어 본 적이 없다며 시도 조차 해보려 하지 않는다. 직장도 비슷하다. 조건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놓치면 안 되는 조건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마치 평생직장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미국인과 결혼한 어느 외국인 친구는, 미국에 오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이곳으로 이주했지만,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남부 출신 남편 탓에 미국 생활 6년 차임에도 본인이 살고 있는 주 외에 다른 곳에 거의 가본 적이 없다. 아이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 겸 휴가나 여행을 가자고 해도 어떻게든 핑계를 만든다고 한다. 


당연히 남부 시골 사람이라고 다 이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만난 남부인 중 90% 가까운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보였다. 남부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오히려 안 가본 곳에 가보고 색다른 걸 재미있어하는 남편은 이 동네에서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남부인들의 이런 특징에 대해 말했을 때, 남편 또한 그 말이 맞다며 매우 수긍했다. 


한 지역에 오래 머물렀다고 해서 함부로 그 사람의 사고의 크기 또한 한정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있는 환경에 따라서, 또 접하는 사람에 따라서 내 세상의 크기가 변화한다는 건 사실이다. 늘 같은 것만 보고 같은 사람만 만나는 이들의 시야가 넓을 거라 생각하기 어렵다. 추측하건대, 이런 남부식 성향을 가진 부모님을 따라 다양한 경험을 못 해본 유년 시절의 영향으로, 커서도 낯설고 새로운 것들에 보다 큰 긴장감을 느끼고, 익숙한 것들에 보다 큰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자라며, 그들이 봐 왔던 사람을 계속 답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이런 라이프 스타일에 만족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시간이나 예산 문제 상관없이 단기 휴가지나 여행지도 매년 같은 곳으로 가고, 먹는 것도 매번 같은 것만 먹고, 낯선 것에는 눈도 안 돌리는 게 정말 신기하다. 단순히 시골 사람들의 성향인지, 미국 남부인들의 성향인지 정답을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이곳에서는 지박령이 되어버린, 또는 지박령을 자처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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