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를 시작하자 내 밑바닥이 보였다

by 라봇

좋아하는 수필 작가가 ‘나에게서 멀어지려 멀리 떠날수록 알게 되는 건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베트남에서 거주를 시작하면서 이 말에 아주 절실하게 동감을 하게 되었다.


내가 베트남으로 떠났을 때는 내 나이 서른이었다. 이제 막 학생 티를 벗은 풋내기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해 보고, 고생하며 돈도 벌어본 나이라는 것이다. 지금 보면 남들 다 하는, 고작 그 정도의 경험으로 낯선 해외 생활에 자신감을 가진 게 어이없지만, 그 나이에 막연한 자신감 빼면 뭘 갖고 있겠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베트남 생활에서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주 철저히 부서졌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 아는 게 없고 생활력이 부족한 인간인지 모르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발견한 나는 그야말로 잘하는 걸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무능력자였다.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집안일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직업도 없으면서 경제관념도 같이 날려버린 사람이었다.


거너와 함께 살며 자연스럽게 요리는 내가 도맡게 되었는데, 둘 중 음식에 더 진심인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대충 식빵에 햄이랑 치즈 껴서 먹는 거너보다, 제대로 밥을 먹고 싶어 하는 내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물가에 대한 감각이 없고 경제관념이 없던 나는 장을 볼 때마다 매번 비싼 마트에 가서 가격표도 안 보고 식재료를 담아버렸다. 베트남이 한국보다 저렴한 건 맞지만, 막상 살아보면 생활비가 엄청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좋은 재료를 더 저렴하게 파는 곳을 알아보고 장을 봐야 하는 게 기본 중에 기본인데, 나는 영화에 나오는 재벌 3세마냥 먹고 싶은 걸 발견하면 그냥 바로 카트에 넣어버렸다. 머릿속에서 환율 계산하는 게 복잡했고, 그냥 '싸겠지' 라는 게으른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둘이서 일주일 치 식재료에 소비하는 돈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데 돈은 이렇게 쓰면서 오히려 살은 빠졌다. 그것도 요리를 못 해서.


믿을 수 있겠는가. 곱게 자라지도 않는 서른 살의 여자가 요리를 못 해서 살이 빠진다는 게.

사실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크게 걱정 안 했었다. 요리 수업도 들어본 적 있고, 혼자서 제법 여러 음식을 만들어봤기 때문이다. 요리 못 해서 굶을 일을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칼질이 힘들어서 채소 다듬는 데 30분이 걸리고, 겨우 두 사람 먹을 분량을 가늠하지 못해 완성된 음식은 늘 양이 부족했다. 무슨 반찬을 세네 가지 만드는 것도 아니다. 식사 때마다 요리 한 두 가지 만드는 데 한 시간 가까이 쓰고 체력이 방전됐다. 만든 양도 적으니 마음껏 먹지도 못 하고 거너랑 서로 양보하는 척 눈치만 보면서 먹었다. 양이 부족하면 더 만들면 되지 않나 생각할 텐데, 이미 그거 만드느라 힘을 다 써서, 더 이상 부엌에 서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밖에 나가 베트남 음식 사 먹으면 된다고 생각해도, 막상 여기 사니 베트남 음식에 쉽게 질려버려서 한국 음식만 갈구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 요리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 내 입맛은 뜨끈한 국물을 원하는 아재 입맛이었던 것이다. 피시소스 냄새에 절여져 있다가 간만에 신라면이라도 한 번 먹으면 그 매콤한 향에 온 세포가 찌릿찌릿했다. 베트남에서 한식당은 가격이 비싸서 자주 먹을 수 없는 그런 고급진 곳이기에,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집에서 한식을 만들어 먹으려 하는데, 내 요리 꼬라지가 이 모양이니 다이어트도 이런 다이어트가 없었다.

요리뿐인가. 청소도 더럽게 못 했다.

우리가 구한 이 낡은 집은 바닥이 타일이라 빗자루와 마대자루로 청소를 해야 했다. 학교 다닐 때 써 본 청소도구지만, 고등학교 졸업한 후 빗자루를 손에 잡아 본 적이 없다. 누가 한국 아파트에서 갈색 볏짚 숭숭 빠지는 그런 빗자루로 청소를 하나.

거너는 엉성한 나의 빗자루질과 마대자루 청소에 놀라워하며, 쓰는 법을 가르쳐줬다. 집안일을 나만 하는 건 아니지만, 거너보다 청결 기준이 조금 더 높은 내가 청소를 더 하고 싶어 했다. 근데 웃긴 건, 내가 하는 여러 번의 청소보다 거너가 가끔 한 번 하는 청소가 더 깔끔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씀씀이, 내 입맛, 요리 실력과 살림 능력, 벌레 공포증 등 새로 알게 된 나의 모습들이 너무 벅차,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제 그만 알고 싶어졌다. 익숙했던 생활환경과 도와주던 가족들의 보호막이 사라지니, 발가벗겨진 진짜 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샘이 나게도 나와 똑같이 발가벗겨진 거너는 나랑 정반대였다.

한국에서는 어눌하게 말하는 소심한 외국인인 줄 알았거늘, 살림살이부터 오토바이 운전, 집수리, 일감 구하기 등 많은 것들을 문제없이 해내는, 오히려 불편한 환경에서 진가가 나오는 사람이었다. 같이 살아보니 비교되는 서로의 찐 모습에, 나는 그에게서 열등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부족하고 못나도 이것도 나인 것을.

나이가 찼다고 다 어른이라고 할 수 없듯이, 익숙한 조건에서만 실력을 발휘하는 게 진짜 프로가 아니듯이, 그냥 이런 나임을 받아들이고 다시 처음부터 배우고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부족한 나를 마주한 후,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시작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남들 보기에 나이만 차곡차곡 쌓은 사람이다. 그래도 이제는 살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요리는 하게 됐다. 경제는 잘 몰라도 마이너스 통장은 만들지 않고 있다. 티끌만큼의 발전이지만, 이런 내 티끌이 모이면 태산은 아니어도 동산 정도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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