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에서 집세 벌기

by 라봇

얼렁뚱땅 급하게 마련한 베트남의 첫 거주지는 1년을 기본 계약으로 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3개월에 한 번씩 3개월치 월세를 한꺼번에 지불해 달라고 요구했다. 보증금 금액은 집세의 한 달치 금액이었다. 그러니 처음에 계약을 할 때 보증금+3개월치 집세 즉, 4개월 치 집세를 건네야 했는데, 총 2200달러의 돈이었다.


베트남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베트남에 은행 계좌 같은 걸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고스란히 전부 현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우리는 그만한 현금을, 그것도 달러로 베트남에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일단 계약서를 쓰고, 집 열쇠를 받을 때 집세를 지불하기로 했다.


거너와 나는 베트남에 오기 전에 집세와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 분담할 것인지 얘기를 나눈 적은 있으나 답 없는 대화였다. 둘 다 저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베트남에 일을 구해서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누가 어떻게 분담하자라고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트남에 일단 가서 일을 찾아봐야 하는 정말 맨땅의 머리를 내던지는 도전 정신만 갖고 온 거라, 준비되어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계약한 집에 들어가기 위해 당장 2200달러가 필요했다.

현재 손에 들고 있는 현금을 합쳐도 부족했다. 우선 ATM으로 한국과 미국에 있는 계좌 돈을 좀 뽑아보자며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진 어두운 다낭 거리는 비까 번쩍한 조명들이 넘실거렸다.

그렇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다낭은 관광지였던 것이다. 24시간 카지노가 돌아가는.


ATM 기계를 찾으러 배회하던 우리는 그 불빛을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카지노로 들어섰다. 내 생에 첫 카지노 출입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한 리조트에 딸려 있는 지하 카지노였다. 영화에서 보던 호화롭고 화려한 카지노가 아니라, 작은 규모의 담배냄새에 절어 있는 그런 카지노였다. 딜러와 손님이 직접 마주하며 하는 게임보다는 슬롯머신 기계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음식도 있었지만, 베트남인 걸 감안해도 값이 터무니없게 비쌌을 뿐만 아니라, 그런 담배 쩐내 나는 곳에서 먹었다가는 내가 담배를 씹는 건지, 뭘 먹는 건지 구별이 안 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날까 주위를 둘러봤더니, 다른 건 다 비싼데 담배만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공짜 담배 연기가 자욱이 깔린 카지노는 아편 소굴을 연상케 했다.


문득 내가 못 올 곳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보다 카지노 경험이 있던 거너가 카지노란 원래 이런 곳이라며, 슬롯머신 카드를 받아왔다. 카드에 현금을 미리 충전해야 게임을 할 수 있었기에, 충전 금액을 갖고 한참을 고민했다. 집세 낼 현금이 모자라서 밖에 나왔다가, 이 무슨 카지노에 얼마를 쓸지 생각하고 있다니. 아직도 더위에 녹아내린 뇌가 펴지지 않았나 보다.

뇌가 쪼그라들 때 간댕이도 같이 쪼글아들어서, 쉽사리 현금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거너가 쓰는 10만 원에 얍쌉이처럼 같이 묻어가기로 했다. 카드는 각각 받았지만, 거너의 카드 하나만 충전해 슬롯머신 위주로 돌아다녔다. 그게 가장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슬롯머신 속 스크린은 어둡고 습한 카지노와 상반된 모습이었다. 화려한 아이콘들이 계속해서 뱅글뱅글 돌아갔고 90년대 앙케이트 게임 못지않은 낭랑한 음향이 울려 퍼졌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거너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 화면 속 불빛들이 혼을 쏙 빼놓고 우리 돈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네가 해 볼래?”

5분 만에 충전한 금액을 반이나 잃은 거너가 카드를 나에게 넘겼다. 그걸 받아 들고 가장 구석에 있는 슬롯머신을 골랐다.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있는 구석탱이 기계가, 왠지 행운 아니면 쪽박을 제대로 던져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남은 금액을 한 번에 다 배팅했다. 카지노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운이 따라주는 것도 아니고, 엄한 돈 더 써버리기 전에 깔끔하게 주고 떠날 생각이었다. 다시금 돌아가는 스크린에 아롱거리는 눈을 간신히 뜬 채 애기 엉덩이 사이즈만 한 STOP 버튼을 냅따 내리쳤다. 기계는 사람 애간장을 태우며 아주 느릿느릿 멈춰 섰다.


하지만 그림을 봐도 여전히 이게 무슨 뜻이지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 끝났나 보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게임 아이템 먹는 ‘띠링’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아직 슬롯머신이 안 멈췄나 하고 바라보고 있을 때, 거너가 외쳤다.

“Holy Shit!”

“왜? 왜? 무슨 상황인데!”

거너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거 네 배당금 올라가는 소리야. 이거 봐! 숫자가 계속 올라가잖아! 네가 이겼어!”

진짜로 왼쪽 상단의 숫자가 끊임없이 올라갔고, 나는 이 띠링 소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잔액 5만 원을 투자했던 배팅 금액은 어느새 60만 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쯤 되면 드는 생각은 ‘돈을 더 베팅할 걸….’

이런 생각이 든 후 그걸 실행에 옮기면서부터 카지노 중독이 시작되는 거겠지. 나는 5만 원밖에 배팅하지 않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창구에서 현금으로 되찾고 도망치듯 카지노를 빠져나왔다. 카지노 입성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뭐 잘 못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밖으로 나와서도 심장이 쿵쾅대고 누가 잡으러 따라올 것 같았다. 큰 길이 나올 때까지 잰걸음으로 걷다가, 리조트 단지를 완전히 벗어나서야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거너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겨우 60만 원이지만, 우리에게는 집세에 부족한 돈을 메꿔줄 충분한 금액이었다. 나는 내가 그날 엄청난 행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운을 진짜 행운으로 남겨둘 수 있는 이유는 그 후로 다시는 다낭에서 카지노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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