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사람에게 목숨을 맡겼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라봇

베트남 입성 첫날부터 여권을 잃어버리고 돈을 요구받는 수모를 겪었지만,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베트남으로 이사 간다는 말에, 친구가 자기가 아는 베트남 지인을 소개해준 것이다. 그녀는 친구가 다낭 여행 중에 만난 호텔리어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고, 내 얘기를 하니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흔쾌히 연락처를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SNS로 가기 전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고, 다낭에 오면 한 번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녀가 제안한 날은 내가 도착한 첫날이었는데, 여권 사태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오케이를 해 둔 상태였다. 3교대로 일하는 그녀가 나 때문에 저녁 시간을 비워뒀을 텐데, 여권 찾느라 지쳤으니 못 만나겠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대략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는 내가 있다는 공항으로 오겠다고 했다.


공항은 오토바이 출입이 안 돼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공항 근처 대로변에서 우리는 첫 만남을 가졌다. '칼리'라는 영어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20대 중반의 여리여리하고 청순한 아가씨였다.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에는 우리가 있는 곳이 너무도 어둡고 위험한 도로였기에, 칼리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인사만 하고, 바로 자기 뒤에 타라고 손짓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탄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나는 오토바이는 황천길로 가는 교통수단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있어도 택시 위주로 이용할 생각으로, 절대 오토바이는 안 탄다고 다짐했는데, 그런 다짐을 지키려다간 오히려 베트남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는 걸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깨달아버렸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외국인을 위해, 공항까지 친히 와준 사람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칼리의 오토바이에 올랐고, 거너는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혼자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칼리는 내가 오토바이에 올라타자마자 빠른 속도로 다른 오토바이 떼 속으로 뛰어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살려달라고 외치며 전혀 의지가 되지 않는 칼리의 가냘픈 몸뚱이만 부여잡았다. 헬멧도 안 썼으니 사고가 나면 나는 그냥 머리가 깨진 채로 내동냉이 쳐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앞에서 칼리가 뭐라 뭐라 말을 걸었지만, 바람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사실, 바람소리는 핑계고 뭐를 들을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공항 도로를 빠져나가 시내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오토바이 백 라이트 불빛에 눈앞이 아롱거렸다. 양 옆으로 다른 바이크 운전자들이 스칠 때마다 그들의 숨소리까지 느껴졌다. 너무나 가까워 부딪힐 것 같아 심장마저 오그라들었다. 처음 본 베트남 처녀에게 덜컥 내 목숨을 맡기다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정말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그 오토바이 위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칼리는 본인이 자주 간다는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까막눈이었기에 알아서 주문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윽고 흰 죽과 검은 소스로 버무려진 고기가 나왔다. 고기를 발라 먹으며 물었다.

“이거 무슨 고기야?”

“개구리 고기야.”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 어쩐지 고기 모양이 개구리 다리더라니..

침착하게 식사를 이어갔지만, 처음 먹는 개구리 다리가 낯설어 많이 들어가질 않았다.

사실 개구리가 이 날의 첫 끼니였는데도, 반이나 남기고 말았다.

나는 반도 차지 않은 위장을 부여잡고 연신 배가 부르다를 외쳤고, 그렇게 개구리 고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권을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하루가 길었는데, 칼리 덕분에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거라는 말이 와닿았다. 인생의 첫 오토바이부터 첫 개구리 고기까지. 나는 여유를 느끼고 싶어 이 나라에 살기로 했는데, 하루 종일 지속되는 각성 상태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누군가 내게 베트남 이민 첫날의 소감을 물었다면, 그건 에스프레소를 맥주잔에 가득 부어 마시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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