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어항집

베트남에서 집구하기

by 라봇

하루빨리 불편한 에어비앤비 방에서 벗어나고 싶어, 바로 다음 날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났다. 미리 그에게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그를 통해 바로 두 군데의 집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예정은 적어도 세네 개의 집을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없이 연이어 집을 보러 다니는 게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다. 한국에서는 중개인 차를 타고 같이 이동하기도 하지만, 베트남 중개인의 오토바이에는 이미 그와 그의 조수까지 타고 있어, 우리가 얻어 탈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이동할 때마다 택시를 부르고, 뙤약볕에서 기다리기를 반복하니 금방 체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어떤 집은 중개인이 열쇠를 안 갖고 왔다며, 허둥지둥 대는 바람에, 건물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못 한 집도 있었다.


결국 정반대인 두 개의 집만 본 채 골라야 했다. 첫 번째 집은 둘이 살기에는 넓은 사이즈의 낡은 주택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축이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의 작은 아파트였다. 둘 다 월세로 550달러를 요구했다. 나는 솔직히 신축 아파트로 가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크기는 작은 대신 세탁과 청소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편해 보였다. 하지만 거너의 생각은 달랐다. 거너는 첫 번째 집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다. 다른 것보다 집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거너가 3년간 한국 생활을 할 때는 원룸형 오피스텔이나 빌라에 살았는데, 말은 안 했지만 땅덩어리 넓은 미국에서 살다가 크기 작은 한국식 원룸에 사는 게 내심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월 550달러로 큼직한 주택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선택은 나보고 하라고 했지만, 큰 집에서 살면 방 하나를 공유 숙소에 올려서 용돈을 벌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오면 부담 없이 우리 집에 재울 수 있다는 등 나를 꼬드겼다. 그의 말에 마분지처럼 얇디얇은 내 귀는 사정없이 펄럭거렸고, 결국 꼬드김에 넘어가 첫 번째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이 집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보자면, 일단 외국인 한 명 없는 현지인들만 사는 거리에 있다. 다낭 자체가 작아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라지만, 관광객들이 절대 안 가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거너와 내가 이 거리를 걸어 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외지인이라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볼 정도였다. 그리고 가정집인데도 불구하고, 두꺼운 철문으로 닫혀 있었는데, 내 얼굴 크기만 한 자물쇠를 열면 거실이 훤히 비치는 통유리가 드러났다. 나는 무슨 상점 들어가는 줄 알았다. 남의 가게인데 우리가 잘 못 찾아온 건가 생각할 정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 통유리문이었다.


베트남도 현관 개념이 없는 건지 그냥 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었기에 어디에 신발을 벗는 건지, 벗는 문화는 맞는 건지 헷갈렸다. 1층은 거실과 부엌이 있는 공간으로, 부엌이 있음에도 창문은 없어서 환기를 시키려면 무조건 문을 활짝 열어야 했다.


문을 안 열어도 어차피 통유리 문이었기에, 거실에 tv라도 보려고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보이고 그들도 나를 다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사생활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투명한 어항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편하게 입고 있는 걸 포기하거나, 그냥 내 모든 걸 동네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거나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했다.


그 외에도 식당에서 쓸 듯한 대형 가스통을 직접 연결해 부엌에서 써야 하는 것과, 한 50년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세탁기 등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냥 역사 체험 하러 왔다 생각하기로 했다.

동남아 더위에 뇌가 녹아버린 나는, 더 이상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가슴 한쪽의 찜찜함은 눙쳐버린 채 1년짜리 계약서에 날인을 했다.


처음에는 내 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유리 현관문이 너무 낯설어서, 한 여름에도 집 안에서 옷을 잘 갖춰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지나는 이들이 보건 말건 그냥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살았다. 한 때 한국에서도 집집마다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빤스 바람에, 러닝 바람에 이웃들과 시시콜콜한 것도 공유하며, 사생활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가 있지 않았나. 그게 좋기만 하다는 건 아니지만 현지인들만 사는 거리에서 최대한 이곳에 녹아들고 익숙해지려면, 나도 그들처럼 사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그냥 이 집을 어항집이라 부르기로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밖에서 나를 쳐다보면 쿨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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