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가택신과의 조우

by 라봇

카지노에서 번 돈으로 집 계약금을 치르고 열쇠를 받아 들었다. 집주인은 비어 뒀던 집에 세입자가 들어오자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었고, 우리가 본격적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 집 청소를 비롯해 주방도구, 침구, 소파까지 새로 준비해 줬다. 집주인과 부동산 직원이 떠나고 거너와 나만이 집에 남자, 진짜 다낭에서 사는구나 라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한국에서도 독립을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베트남에 와서 직접 살 곳을 마련했다는 게 괜히 뿌듯해졌다. 좋은 기분으로 주방에 물을 마시러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베트남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계약 전에 집을 둘러보러 세 번이나 왔을 때도, 집주인이 있을 때도 안 보이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우리만 남자 그들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바선생이었다. 날씨가 덥고 습한 동남아에는 당연히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정글 동물들도 많고 벌레도 많다. 도마뱀은 기본이고 두꺼비, 뱀도 심심치 않게 봤다. 하지만 난 운이 좋았던 건지, 그간 동남아 여행에서 한 번도 바선생들을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그 나라 바퀴들의 사이즈를 알 수가 없었다.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 바닥에 무언가 큰 물체가 떨어져 있길래, 뭐가 떨어진 건지 시선을 고정하고 살펴보는데, 그것이 꿈틀 움직였다. 직감적으로 벌레라는 게 느껴졌고,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바선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는, 난생 그런 크기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내 스마트폰 사이즈와 거의 흡사한 크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현실감이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육중한 몸집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그 소름만큼 목청에서 비명이 새어나갔다.


무슨 일이냐고 느릿느릿 부엌으로 걸어오던 거너도 육두문자를 난발하며 빗자루를 찾았다. 얼마 뒤 그가 처리했다고 괜찮다고 했을 때도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가 있었다. 매미만 한 게 바퀴라니.. 너무 말도 안 돼서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될 정도로 충격이 컸다. 보통 한 마리가 발견되면 그 안에 여러 마리의 바퀴 떼들이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그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월세 사 개월 치를 먼저 지불해 버렸기에, 차마 그 집을 떠난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방역에 대해 묻기로 했다. 하지만 둘 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끼리 얘기하다가 오해가 생겼고, 결국 거너가 전화를 뺏어 들고 대신 얘기를 이어 나갔다. 집주인은 다음 날 방역 업체를 불러주기로 했다.


전화를 끊은 거너는 내게 화를 냈다.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왜 굳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냐는 것이다. 여기서 거너와 나의 성격 차이가 드러났다. 나는 어려운 부탁이 아니면 주변에 물어봐서 해결하려는 편이고, 거너는 낯선 누군가에게 무언가 물어보거나 부탁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난 식당에서 반찬이 모자랄 때 종업원을 불러 더 달라고 요청하는데, 거너는 절대 종업원을 부르지 않고, 직접 종업원을 찾아 부엌이나 카운터까지 간 후 추가 반찬을 요청한다. 길을 찾을 때도 지도를 아무리 봐도 못 찾겠으면 나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때도 있는데, 거너는 그걸 못 하고 끝까지 지도만 붙잡고 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또 본인이 피해를 받는 것도 매우 싫어하는 사람으로, 종업원을 부르는 행위와 길을 묻는 행위마저도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탓에 그는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해, 굳이 그에게 신경 쓰이는 일을 만들었다며 못마땅해했다.

나는 집 문제는 당연히 집주인에게 알리고 요청하는 게 세입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데다가, 다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외국인 두 명이서 말도 못 하는데 어떻게 방역 업체를 부르고 해결하겠다는 거냐며 말다툼이 이어졌다. 안 그래도 핸드폰만 한 바퀴 새끼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민한데, 여지없이 벌어지는 성격 차이로 힘들고 힘든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방역 업체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하는 해충 방역이란, 80년대 한국에서 소독약 차가 거리에 뿌리고 다닌 것처럼 허옇고 연기 폴폴 나는 약을 집 안 전체에 터트리는 것이었다. 그 약은 사람까지도 죽일 것처럼 독한 냄새를 풍겼다. 믿음직스러운 약은 아니었지만, 당장 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부디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 숨어있는 모든 바퀴 알들까지 다 전멸시키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바람은,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된 바선생들의 반격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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