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으로 떠난 신혼여행

by 라봇

결혼의 다른 절차에는 관심이 없었어도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신혼여행이다. 사실 내게 ‘신혼여행’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핑계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진짜 속마음이었다. 그렇지만 베트남 생활 때문에 마이너스로 출발하는 우리에게 하와이나 몰디브 같은 여행지는 환상 속에나 있었다.


그래서 거너에게 신혼여행을 제안했을 때, 놀랍게도 거절당했다. 그동안 사귀면서 여행도 여러 번 가봤고 이제 베트남에서 일도 관둬서 수입도 거의 없는 우리 처지에 굳이 신혼여행이 필요하냐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맞는 말이다. 결혼을 하든 뭘 하든 예산에 맞게 해야 하는 거니까. 괜히 평생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라는 이유로, 기분껏 카드 긁었다가 신혼 초부터 거지꼴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결혼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던 내가 좀처럼 포기할 수 없는 게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만은 꼭 신혼 때 가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내 통장을 털어 우리 상황에서 저렴하고 재미있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예약했다. 바로 ‘푸꾸옥’이다. 베트남에 있는 우리에게 ‘푸꾸옥’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는 하와이였다. 지역을 정하고, 적당한 가격대의 호텔을 찾아 예약했다. 그곳은 바닷가 바로 앞에 인피니티 풀이 있어 경치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호텔의 자랑인 수영장에서 요단강에 발을 담그고 오는 경험을 했다.


사람 없는 조용한 수영을 즐기고 싶었던 우리는, 저녁을 먹고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을 무렵 수영장으로 나갔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것과 달리 나는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필요한 사람이다. 일단 수경이 꼭 필요하다. 물속에서 눈을 못 뜨기 때문이다. 또 이상한 건 자유영은 할 수 있는데, 가만히 물에 뜨지는 못 한다.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물에 빠져 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수영장에 나와서야 깜박하고 객실에 수경을 놓고 나온 걸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기 귀찮았던 나는 눈을 감고 헤엄치기로 했다.


수영장의 반은 1.6m, 나머지 반은 2m가 넘는 깊이였다. 거너와의 수영 대결을 위해 1.6m 쪽에 서서 '시작' 소리와 동시에 눈을 감고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였다. 일자로 앞으로 쭈욱 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열심히 수영을 해 앞으로 나아가도, 손이 수영장 끝에 닿지 않는 것이다. 어느덧 숨은 차는데 해도 해도 수영이 끝이 안 났다. 거너는 먼저 도착을 했는지, 나를 향해 무언가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첨벙 거리는 내 발소리에 묻혀 그의 말이 잘 들리지가 않았다. 지쳐버린 나는 수영을 멈추고 팔다리를 세워 바닥에 서려고 했다. 그런데 발이 닿지 않았다.


수영을 멈춤과 동시에 물속으로 꼬르르 가라앉아버린 나는 그대로 패닉이 왔다. 알고 보니 눈을 감고 수영하는 바람에 방향 감각을 잃고 2m 깊이의 수영장으로 헤엄쳐 왔던 것이고, 내 키를 훌쩍 넘는 수영장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것이었다. 먼저 수영장 끝에 도달한 거너는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내 물장구 소리에 묻혀 나한테는 들리지 않았다. 발을 디딜 것도, 붙잡을 것도 없는 나는 허공에 두 손만 허우적거리며 열심히 물을 먹어댔다. 패닉 상태로 온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거리니 그 상태로 더 가라앉기만 했다. 물에 가라앉아 위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진짜 이게 끝이라고? 정말 이렇게 죽는 건가? 진짜로 이렇게 가는 거야?’


모든 사람이 언제 하늘로 불려 갈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신혼 여행지 수영장에 빠져 죽는 건 상상도 못 한 결말이었다. 삶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다니. 숨이 턱턱 조여 오는 걸 느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죽는 게 참 억울하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죽어가는 나를 보고 거너가 수영장으로 뛰어들어왔다. 너무 놀란 그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수영장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은 그 주변에 잡히는 무엇이건 잡아 누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역시 그가 내게 왔을 때, 거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머리와 상관없이 내 양팔은 숨을 쉬고 싶다는 본능으로 그의 머리를 물속 깊이 눌러 댔고, 그는 나를 구하기는커녕 이제는 같이 빠져 죽어가고 있었다. 함께 백년해로하기 위해 결혼했는데, 실상은 신혼여행에서 함께 저 세상으로 갈 판이었다. 이 상태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포기 상태에 들어갈 때, 갑자기 내 몸이 물 위로 둥실 떠올랐다. 순간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키가 장대같이 큰 그 천사는, 나를 수영장 밖으로 꺼내더니 영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지나가던 호텔 투숙객이었는데, 처음에는 둘이 노는 줄 알고 지켜보다 자세히 보니 둘이 빠져 죽어가고 있어 뛰어들어 나를 구해 낸 것이었다.


내가 건져지자 거너도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 정신이 나간 나는 그 천사에게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나도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소리만 지껄였다. 그래도 객실로 돌아온 후,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여유를 되찾았지만 내가 죽어가는 걸 목격한 거너는 그 충격이 컸는지 한 시간 동안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후로 그는 수영장에서 내가 깊은 물로 향하면 옆에 따라붙을 정도로 깊은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서울에서 하기로 계획했던 결혼식을 하마터면 요단강에서 올릴 뻔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자고 간 신혼여행인데, 진짜로 잊지 못할 요단강 추억을 만들어버렸으니, 소정의 목표 달성은 한 셈이다. 그리고 나는 성인 수영 교실에 등록했다.

keyword
이전 15화결혼반지 기는 한데, 커플링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