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 기는 한데, 커플링은 아닙니다.

by 라봇

본래 그다음 주에 나 혼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결혼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거너도 급히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함께 가기로 했다. 혼인신고를 위해서였다. 출국 전, 그는 다니던 베트남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일주일의 휴가를 얻어 왔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대사관, 구청 등을 오가며 비자에 필요한 준비와 결혼식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했다.


일단 한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거너가 미혼이라는 증명서를 받아 왔다. 그 길로 바로 종로에 있는 구청으로 가 혼인 신고서를 제출했다. 전 날, 집에서 미리 작성해 갔기 때문에 가서 따로 적을 건 없었다. 엄마는 식탁에서 신고서를 작성 중인 나를 보고, 정말 후회는 없겠냐고 물었다. 혼인 신고는 구청에서 하지만, 이혼은 법원에서 하는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람 앞 길을 어떻게 알겠느냐만, 현재 거너와의 혼인 신고를 하는데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었기에, 엄마 아빠를 증인란에 적어 넣고 작성을 마쳤다. 한국에서 혼인 신고를 먼저 한 이유는, 우리가 여기서 법적 부부라면 미국 비자 신청이 더 수월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인 신고 후, 근처 백반집으로 가 제육 덮밥을 먹으며 한국에서 정식 부부가 된 것을 기념했다. 정말 프러포즈부터 혼인신고까지 로맨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우리였다. 혼인 신고 다음으로 한 일은 반지 구매였다. 우리는 그 어떤 예물도 하지 않았지만, 결혼반지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부천에 있는 대형 보석점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그냥 바로 눈앞에 보이는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결혼반지가 아닌 커플링을 맞춘다고 말했다. 자금을 넉넉히 갖고 반지를 사러 온 게 아닌데, 결혼반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처음부터 0이 하나 더 붙은 반지들만 보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결혼반지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조금 더 디자인이 화려한 반지를 좋아하는 편인데, 남녀 같이 끼는 커플링은 보통 중성적인 디자인을 많이 쓰고 있다. 내게는 너무 단순한 디자인의 반지라 마음에 안 들었고, 반대로 거너는 아무 디자인도 없는 그냥 동그란 금반지를 사고 싶어 했다. 애초에 주얼리에 딱히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닌 데다 전통적인 미국 결혼반지 스타일이래나 뭐래나.


반지 쇼핑에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결혼반지를 따로 하기로 했다. 너는 너 좋은 거, 나는 나 좋은 거 사자는 것이다. 어차피 결혼반지라는 게, 남들에게 기혼자라는 걸 알리기 위해 하는 거니, 그 역할만 제대로 하는 반지라면 굳이 똑같은 반지를 끼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반지 디자인은 전부 커플링이 아닌 여자 반지 코너에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랐고, 거너는 본인의 바람대로 아무 무늬 없는 금색 링 하나를 골랐다. 그도 각자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기만 한다면 뭘 껴도 상관없다는 사람이라, 내가 본인과 다른 반지를 끼는 데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았다. 커플링을 사러 왔다면서 결국 각자 다른 반지를 사는 우리를 보고, 보석점 직원들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물건을 구매하고 만족해하는 우리를 보고 별 말 하지 않았다.


결혼을 결정하며 우리가 산 건 딱 이 반지뿐이다. 여자라면 보통 꿈꿔왔던 결혼식, 드레스, 반지 등이 있을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도통 그런 쇼핑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끼게 될지도 모를 결혼반지를 집 앞 상가에서, 제일 문 가까이에 있는 상점으로 가 10분 만에 골라버렸다. 그렇게 고른 반지와 함께 베트남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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