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베트남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다낭 집이 익숙하고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이곳을 떠나기 위해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립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기에, 1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다음 달에 집을 비울 것을 알리고,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조금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살고 있는 집은 가구가 전부 있는 풀옵션 집이라 짐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도대체 어디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짐인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뭐가 계속 나와 거실에 가득히 쌓였다.
전기밥솥, 선풍기, 자전거 같은 큼직한 제품들은 지역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중고로 판매 했다. 수건, 요가매트, 탁상용 서랍장 같은 것들은 팔기도 애매해 아예 날을 잡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을 불러 나눠 주었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거너가 봉사활동을 하던 고아원으로 갖고 가 무료 나눔을 했다. 그렇게 하니 그나마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제일 처분하기 힘들었던 물건은 의외로 오토바이였다.
베트남 생활필수품인 오토바이는 내놓으면 무조건 빠르게 팔릴 줄 알았는데, 우리가 타던 오토바이가 너무 오래된 거라 그런지 도통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다. 엔진도 새로 갈았고, 베트남 할머니 얼굴이 박힌 면허증도 포함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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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날이 다 되도록 팔리지 않아 결국 오토바이 렌탈 중고 매장에 제 값도 못 받고 팔아야 했다.
보통 살던 나라를 떠날 때 많이들 하는 건, 고마웠던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거나 사는 게 바빠 하지 못했던 그 나라 국내 여행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는 여행 대신 동네 식당 투어를 다녔다. 이번에 베트남을 떠난다고 해서 영원히 안녕인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오지 못 할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도록, 동네에서 좋아하던 식당들을 전부 방문하기로 했다.
다른 맛있는 음식도 많이 있지만, 내가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다름 아닌 피자와 바지락죽이다. 피시소스로 간을 맞추고 바지락을 듬뿍 넣은 베트남식 바지락죽은 내가 베트남어를 한 글자도 모를 때, 랜덤으로 방문해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짚어 먹게 된 음식인데, 한국인 입맛에 찰떡이라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제일 먼저 모시고 간 곳이다. 피자집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식당으로, 일본인 부부 오너가 동남아를 중심으로 만든 퓨전 이탈리아 식당이다. 신선함 가득한 토핑을 얹어 눈앞에서 구워내는 화덕 피자는 한국의 여느 유명 피자집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맛있다. 워낙 만족도가 높은 가게인만큼 금액도 평균 식당 가격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 했던 곳인데, 거너와 정식 부부가 되어 방문하니 그 기분이 색달랐다. 거너가 아내 이름으로 예약했다며 직원에게 나를 달라진 호칭으로 부르는 게 어색하면서도 무언가 몽글몽글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미 혼인 신고가 끝난 후까지도 관계가 달라졌다는 감흥이 없던 우리였기에, 로맨틱한 기분은 일절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남편과 아내로 좋아하는 식당에서 마주하니 그제야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반지를 살 때도,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화려함과 거리가 먼 우리는, 반짝이는 보석보다 좋아하는 밥상 앞에서 비로소 가족이 되었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실행력 하나만으로 베트남으로 와서, 눈물 콧물 짜낼 만큼 고생도 했지만, 여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경험들이 내 삶 자체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거너와 함께 사는 것도, 잘 못 되면 영영 헤어지는 배팅 같은 도전이었는데 베트남 살이를 통해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오래전 다낭에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는 지인의 친구를 만났을 때는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그곳이, 이제는 오래도록 추억할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베트남을 떠나지만 어쩌면 아직 내 인생의 베트남 이야기가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다시 베트남 이야기가 이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 걸 보면, 내심 내가 그걸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첫 번째 베트남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두 번째 이야기도 머지 않아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보며, 이제는 나의 또 다른 터가 될 미국 살이 이야기도 열심히 그려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