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인관계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
해외에 살면 다양한 형태로 타문화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웃부터 시작해서 직장 상사나 동료, 학교의 친구, 선생님, 자주 가는 식료품 가게의 주인 등 수많은 인간관계를 타문화권 사람들과 맺게 된다. 이 문화 간 관계는 형태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그 관계도 복잡한데 이문화 환경의 대인관계에 대한 이해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최근의 문화 간 관계 (친분, 우정, 연예 포함)에 대한 연구들을 검토해 보면, 문화 간 대인 관계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다문화 소통 및 다문화 교육 분야에서 잘 알려진 학자인 제인 젝슨 (Jane Jackson)의 저서를 바탕으로 타문화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영향을 미치는 각각의 변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유사성-매력
먼저 유사성-매력 가설은 우리가 서로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거나, 인종과 민족성이 비슷하고 유사한 신념, 가치관, 종교,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매력을 느낀다 (Adler et al. 2015; Byrne 1969). 다른 문화권의 친구를 사귀게 되면 차이점이 훨씬 더 많게 되지만 동시에 비슷한 점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성격이 비슷하다던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다던지, 가치관, 경험, 인생 목표 등이 비슷하다든지 말이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유사성이 적다 하더라도 개인적 유사성이 크면 이문화 관계에서도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서로 친해질 수 있다. 필자의 학생들 중에 카메룬 학생과 독일학생이 있는데 항상 짝을 이루어 사이좋게 다닌다. 둘의 관계가 너무 좋아 친구를 넘어 자매처럼 지내길래 어찌 그리 친할 수 있냐고 묻자 둘 다 배드민턴 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단다. 둘은 강의가 끝난 후에도 배드민턴을 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다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면서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연결이 깊어지면서 언어적 문화적 차이는 덜 중요해진 것이다.
2. 근접성의 기회
타문화권의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면 먼저 서로 다른 언어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할 ‘기회’가 필요하다. 즉 집 밖으로 나가서 이런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는 환경, 즉 학교나 직장, 교회 혹은 헬스클럽이나 독서모임 등 사람들과 근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만 친구가 생기지 않겠는가. 물론 인터넷의 발달로 언어, 사회적 계층, 인종,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커졌고 인터넷은 국가 경계를 훌쩍 넘어 확장되기에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한다. 하지만 최소한 이 기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영어에 능숙해야 한다. 인터넷에 접근성이 없는 빈곤국의 사람들은 이런 의미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영어를 잘할 줄 모르면 이 기회를 박탈당한다.
3. 사회적 네트워크
가족 구성원, 친구 및 지인, 심지어 친구의 친구 중 누군가가 타문화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 관계에 낄 수 있는, 즉 그러한 사람들과 대인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학과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에는 친구 중에 한국 가족이나 지인이 있어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와 언어를 전공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4. 성격
외향성, 타인을 돕고자 하는 욕구, 개방적 사고가 클수록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시작할 가능성을 높다. 성격이 비슷한 경우 친구가 되기 훨씬 쉽지만, 반대의 경우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성격이 달라서 서로 보완적인 경우일 때도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계 독일인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하산과 태국인 약사인 나타야는 문화적 언어적 배경이 전혀 다르지만 스포츠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친구가 되었다. 관계가 발전하면서 서로의 반대 성향 성격이 매우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산은 외향적이고 말이 많았지만, 태국인인 나타야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나타야는 하산이 주도하는 대화가 즐거웠고 스포츠라는 공유된 관심사가 그들을 끌어당기고, 반대 성향의 성격이 서로를 보완했다.
5. 의사소통 의지와 능력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는 환경이라면 성격이 안정적이고 성숙해지면 의사소통에 대한 의지가 커진다. 하지만 제2언어 소통 상황에서는 언어 능력의 유창성과 자신감이 의사소통 의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특정 시간에 특정인과 외국어로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된 상태’가 의사소통 의지의 정의가 되는 것이다. 독일어나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면 외국어를 사용하는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6. 공감능력
다른 사람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지속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다문화 공감’은 상호작용 중에 형성되며, 서로 경청하고 함께 탐색하고 배우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나타나는데 이는 성공적인 다문화 관계의 핵심 요소이다.
7. 정체성 인식 및 인정
상대방이 선호하는 자아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은 다문화 관계에서 신뢰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Ting-Toomey 2018). 상대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공유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의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8. 불안 관리
특히 만남의 초기에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에 대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불안감을 줄이고 다문화 관계의 형성과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확실성 감소 이론은 개인이 자신과 동질 집단(문화, 민족, 성별, 나이, 장애의 여부, 사회 계층 등)이 아닌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소통할 때 불안감이 들고 걱정이 생기면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Gudykunst 2004).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질수록 낯선 사람에서 지인으로 친밀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Berger & Calabrese 1975) 친숙해질수록 상대의 의사소통 스타일, 가치관, 신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소통에 대한 불안이 줄어든다. 즉 우리가 타문화 사람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증가하면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대한 스트레스나 불안 수준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불편하다 하더라도 우리와 다른 타인과 맞부딪치면서야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마음을 열게 된다 (Gao 2015; Gudykunst 2004; Plummer 2019).
9. 자기 공개와 관계의 친밀감
자신의 중요한 정보 (프라이버시)와 세부사항을 드러낼수록 관계가 더 친밀해진다. 알트만과 테일러는 사회 침투 이론을 통해 공개의 깊이 즉, 특정 주제에 대한 친밀감의 정도, 양,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주제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다문화 관계에서는 이것이 동문화 관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다 (Chen & Nakazawa 2012).
10. 공유된 정체성과 관계 유지
성공적인 다문화 관계의 형성과 유지는 물론 의사소통 능력에 달려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면서, 관계 정체성을 개발할 수 있는 관계에서 공유된 정체성을 개발하기 위해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문화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은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상황과 맥락에 적합한 소통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즉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예: 파트너가 더 많은 개인적 공간과 사생활이 필요할 때, 또는 더 많은 지원과 친밀감을 필요로 할 때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Adler et al. 2015). 상대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안심시켜 주기, 걱정하거나 자신감이 부족해 보일 때 격려해 주기 등을 잘할 수 있으면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11. 다문화 소통 능력
사람들은 서로 다른 다문화 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타문화에 민감하고 잘 발달된 다문화 소통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경계를 넘어 상호작용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적고 언어, 성별, 민족, 종교 등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동기가 더 크다. 높은 수준의 다문화 민감성과 다문화 소통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관계를 육성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를 푸는 능력도 뛰어나다. 첸(Chen 1992)은 개인의 ‘타자 지향성, 민감성, 긍정적인 감정을 제공하는 능력’이 다문화 관계를 시작하고 관리하는 성공의 열쇠라고 했다. 또한 자신감 있고 유창한 제2언어 사용자는 문법적 오류를 범하거나 잘못된 단어를 말하는 것에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보다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교류를 시작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
12. 사회적 수용
다문화 관계는 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특정 사회역사적, 정치적, 언어적 맥락 내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만연한 신념과 태도(가족 구성원, 지역 사회, 종교 지도자, 대중 매체의 인식) 및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의 우정과 로맨스에 대한 개방성의 정도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역 사회의 다문화 관계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문화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시작하려는 의지에 영향을 미친다. 즉 인종차별 및 다문화에 대한 교육이 교실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다문화 관계 형성에 훨씬 더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더 다양하고 상호 의존적으로 변함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의미 있는 연결을 키울 수 있는 지식, 기술,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다문화 관계는 동질의 문화의 관계보다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간과 노력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작금의 시대는 다양한 타자들과의 접촉이 증가하고 있기 여러 면에서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중요한 삶의 모토가 되었다 (Vela-McConnell 2011). 열린 사고방식과 다문화 소통 기술의 배양을 통해, 우리는 다문화 관계를 최적화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을 여러 가지 면에서 풍요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