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가는 길
오늘 하루 아들과 2인 1조로 미친 아우토반 질주를 했다.
지금도 머릿속이 지끈지끈하면서 별이 계속 지나간다. 지나고 나니 보람찬, 미친 짓이었다- 반백살 아줌마가 열아홉 아들을 노예 삼아 해낸 광란의 질주!
아들은 원래 오늘 비행기 타고 프랑스 니스에 있는 친구 할머니 댁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 어미는 다음 주 이태리 시에나에서 학회가 있는데 항공료가 자비로 내긴 너무 비쌌다. 장고 끝에 덜 자라서 덜떨어진 아들을 꼬셨다. 반만 같이 운전해서 아빠 있는 근처까지 데려다 다오 (남편은 뮌헨 근처에서 근무한다. 거기까지만 가면 남편을 끌고 이태리로 갈 수 있기에.). 면허 딴지 일 년이 채 안돼서 운전에 환장한 아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슈투트가르트 공항까지 차를 몰아줄 테니 거기서부터 엄마 혼자 가란다. (원래는 뮌헨 공항까지 부려먹으려 했는데 비행기표가 없었다). 슈투트가르트까지만 해도 어디냐, 혼자서라도 635킬로를 달릴양이었거늘.
총 1,300킬로미터의 대장정 중 오늘 아들이 400킬로 내가 300킬로를 달려 남편이 있는 호텔 까지 무사히 골인했다. 차멀미하는 불쌍한 딸래미는 뒷좌석에서
물밖으로 꺼내진 생선처럼 누렇게 떠서 푸드덕거리다 꼬꾸라져 자기를 반복했다.
이 크래이지한 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새벽 3시 30분 기상. 4시부터 이우토반을 질주. 독일 중부 뒤셀도르프로부터 제1차 목표지인 슈투트가르트 공항 근처 맥도널드에 9시 도착.
9시. 다섯 시간의 아우토반 질주 후 아들과 나는 아침을 꿀맛으로 먹어 치웠다. 뒷자리에서 속이 안 좋아 탈탈 털린 딸은 (너무 일찍이라?) 아무도 없는 맥도널드에서 내 다리를 베고 뻗어 누웠다. 나는 그때까지 운전은 한 알갱이도 안 했지만 아들 옆에서 이 녀석을 감시 및 캐어하느라 노심초사하느라 한숨도 못 자고 버텨 기진맥진이었다. 손이 달달 떨렸다. 진한 코코아와 크루아상을 시켰었는데 마시려고 코코아 잔을 들어 올리니 다리를 베고 누워있는 딸래미가 자기 머리에 흘리지 말라 경고한다.
그러나 조수석에서 5시간 동안 운전하는 아들내미를
지켜보느라 탈탈 털린 나에겐 딸래미의 요청을 들어줄 근력이 남지 않았었다. 어쩌랴. 먹으면서 그녀의 머리에 크루아상 부스러기가 골고루 뿌려졌다. 조용히 범죄를 은폐하려는 순간 아들이 사진으로 포착해서 딸에게 고해바쳤고 시체처럼 뻗어서 입만 살았던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으엑! 하며.
사실 오늘은 아들 녀석의 19살 생일이다. 생일 선물로 새벽부터 차를 모는 것을 선택(? 강요 당)했고 남편과 나는 장장 10유로로 아들을 위한 1일 보험을 들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매끈하게 공항 어귀까지 잘 왔으니 이런 것이 보험의 힘이다. 들어놓으면 사고 안 나는 것!
맥도널드에서 간단 조식과 휴식을 마치고 20분가량 더 달려 공항에 도착했고 출국장 앞에서 짧은 작별인사를 나눈 후 아들은 프랑스 니스로, 나와 딸은
남은 질주를 위해 떠났다.
길은 순탄했고 교통상황도 좋았지만 뉴진스 메들리가 아니면 난 살아서 뮌핸에 못 갔을 것이다. 감히 긴장해서 졸리진 않았지만 나머지 운전을 해내면서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들이 간 후 조수석에 앉아있던 딸은 해가 너무 나고 엄마가 너무 시끄럽게 노래해서 옆에 못 있겠다고 뒷좌석으로 피신했다. 점점 쑤셔지는 몸뚱이와 사투를 버리며 마지막 200킬로 남짓한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서 드디어 뮌헨 근처 남편이 머무는 도시 알랠스하우젠의 호텔에 도착했다. 해냈다!
그리고는 딸과 등 돌리고 누워 3시까지 꿀낮잠을 퍼져 잤다. 3시 반경에 딸래미를 억지로 깨워 동네구경을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볼 것이 없었다 (남편이 미리 경고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20분간 더위에 끓어오르는 아스팔드 도로 옆길을 걸어서 겨우 슈퍼마켓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목도 마르고 당도 떨어지고 해서 콜라와 아이스티 그리고 선인장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딸과 슈퍼 밖 스러져 가는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나눠먹었다. 평소 같으면 절대 먹지 않을 불량 식품 같은 아이스크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붕붕 거리며 우리를 공격하는 벌에게 빼앗길까 뚜껑을 닫아가며 먹었다.
그리고는 30분 동안 모든 슈퍼와 데엠 및 로스만, 잡화가게인 테디까지 다 쓸고 다니면서 아이쇼핑을 했다. 바깥은 뜨겁고 볼 것이라곤 바테리 공장, 자동차 부품공장, 회사 주유소, 고속도로뿐인 멋진 휴가 1일!
그런데 왠지 힐링이 되었다. 미친 듯이 운전에서 독일의 심장부를 뚫고 내려와서 대장까지 흩고 난 기분이랄까? 오랜만의 무리한 운전이지만 갓 19살이 된 아들과 콤보로 한 운전이라 좋았나? 볼 것 없는 작은 공장도시에 다라와 핸드폰 붙잡고 못 놀고 나 따라다니면서 불량식품 먹고 있는 딸이랑 같이 있어서 좋은가?
어쨌든 저녁은 퇴근한 남편과 후한 레스토랑에 가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음식 값이 싸지는 않았지만 정말 맛이 있었고 같은 가격에 뒤셀도르프에서는 한 줌의 새모이 같은 식사를 서빙받았을 텐데 여기서는 행복하고 푸근하게 배가 차 오른다.
내일은 남독을 벗어나 오스트리아 인스부륵으로 달린다. 알프스 본지 오래돼서 가슴이 설렌다. 스와로브스키 구경도 하고… 어쨌든 공장과 아스팔트보다는 볼 것이 많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