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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 YOON Mar 06. 2022

꼰대 아닌척 하는 꼰대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봐

나는 꼰대를 정말 싫어한다.

직장 상사여도 꼰대랑은 눈도 안 마주치고 그 앞에서는 말도 안 할 정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나도 후배들이 생기고 나보다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직원들과 같이 일하다보면 순간순간 꼰대기질이 나오는 내 모습에 흠칫 놀랄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직장관계에서 나의 모토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의 모토는 '윗사람보다 아랫사람한테 잘하자' 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윗사람은 이제 내려올 일만 남은 사람들이고, 나보다 먼저 은퇴할 사람들이지만 아랫사람들은 나랑 더 오래 일 할 사람들이고, 5년 뒤 10년뒤에 내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을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후배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꼰대 마인드가 불쑥 나올 때가 있다. 


가령 후배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나 술 한잔 할때 나도 모르게 자꾸 내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회사의 비젼을 고민 하는 친구에게는 자기개발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가라. 이런 공부해라 저런 공부 해라. 학력이 조금 부족한 친구에게는 방통대 다니면서 학사학위 따라. 시간없다. 돈없다는 핑계다. 의지만 있으면 다 한다. 물론 그 친구들이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 역시도 어른들한테 저런 말을 들으면 참 듣기싫었던 기억이 있다. 


1~2년 전쯤 나보다 한 살 어린 전직장 동료를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 직장을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데 여전히 (무기)계약직이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치이고, 회사에서는 그 경력만큼의 대우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도 그런 현실을 답답해하고 힘들어 했다. 내 딴에는 해결 해주고 싶어서 직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 친구는 전문대졸이었기 때문에 먼저 학사 학위를 따라고 했다. 네가 그 회사에 경력 많은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학사 학위 없으면 그 경력 제대로 인정 받기 힘들다. 그러니 2~3년 좀 고생해도 학사 학위 따서 너의 20대를 바친 그 경력을 제대로 대우해주는 회사로 이직을 하던가 지금 그 회사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사실 이 말은 함께 근무했을 때부터 여러번 했었다.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한테는 그게 더이상 좋은 소리가 아니었던듯 싶다. 내가 그 말을 하기 시작하니 집에 가자고 하더라. 그리고 그 이후에는 먼저 보자는 말도 없고 연락도 뜸하길래 나를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생각해서 나도 먼저 연락을 안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고나니 누군가에게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말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어디까지가 조언이고, 어디서부터가 주제넘은 소리인지 말하는 입장에서는 잘 모르게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그런 하소연을 하면 그저 맞장구나 쳐주고 공감만 해주고 다른 말은 안 하려고 한다. 이렇게 말을 아끼다보니 겉으로는 꼰대처럼 안보일지 몰라도 혼자 꽁한 마음으로 꼰대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아끼는 만큼 말하지 않아도 후배들이 알아서 날 챙겨주고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기 시작했다. 난 널 이만큼 배려해주고 있는데 너는 왜 날 알아서 대우해주지 않니? 라는 마음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요즘 신입들은 편하고 있어보이는 일만 하려고 하고 조금만 궂은 일을 시키면 불평 불만을 쉽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후배들이 뭘해도 미워보이고 그 말과 행동을 다 왜곡해서 보게되었다. 마음이 이렇다보니 순간순간 후배들을 싸늘하게 대하면서 마음의 벽을 쌓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나이차이 많이나는 직원들과 매니저라는 동등한 직급에서 일을 하려다보니 거기서 오는 부침이 있었나보다. 어린 매니저들이 회사 욕을 하는 것이 그저 노력은 하지않고 인정만 받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상사도 아니고 이 회사 입사도 그들보다 늦은데 잔소리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어 참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것이 나도 모르게 그들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함께 공유해도 될 업무를 독단으로 진행하고, 그들의 업무를 축소 시키고 내 영역을 넓히려고 업무분장을 감행했다. 그러다 보니 분명 매니저 전체 단톡방이 있는데 묘하게 나만빼고 카톡이 오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꼰대가 되지 않겠다 해놓고 스스로 고립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런 내 모습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러다간 고립과 도태를 겸비한 최악의 고인물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위험을 감지했다. 


스스로 조금 더 편해지고, 조금 더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내가 꽁한 마음을 갖게 된 데에는 내 자신이 후배들의 스펙을 더이상 따라갈 수 없음을 느끼고, 직장 내에서 연차만큼 직급만큼의 영향력을 제대로 행세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냥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마음의 벽이 사라졌다. 훨씬 더 후배들과의 관계가 좋아졌고, 더 편안하게 소통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후배들에게 잔소리 하고 싶은 걸 꾹꾹참는 꼰대 아닌척 하는 꼰대이지만 도태와 고립을 겸비한 고인물로 가는 지름길에서는 벗어났다고는 생각한다. 이 길이 고인물로 향하는 돌아가는 길인지 아니면 멋지고 쿨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계속해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부담없이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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