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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Dec 22. 2021

크리스마스를 좋아해

해피 홀리데이 말고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따뜻하고 설레는 연말 특유의 분위기도 좋고, 추운 계절인 것도 좋다(북반구에 살아 다행이다).


모태신앙인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성당에 다녔는데, 일년  가장 좋아하는 때는 성탄절 4 전부터였다. 성탄절 4 전부터는 대림시기라고 하여 성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보라색부터 연보라, 분홍, 흰색의   초를 준비하고 1주에 하나씩 초를 켰다. 진한 색부터 시작해 마지막 흰색 초까지 불이 밝혀지면 이제 성탄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초에 불을 켜는 것도 재밌었지만 대림시기부터는 성탄과 관련된 성가를 많이 불러 좋았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성탄미사 때만 나와서 올해 성탄미사나 성탄절이 있는 주에 부르지 않으면 시무룩하고 그랬다.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는 것도 좋았다. 지금 보면 영 촌스럽지만 오너먼트를 직접 만들기도 했었는데, 작은 상자를 색종이로 싸서 금색 리본을 묶어 선물상자를 만들어 트리에 달았다. 하늘색 색종이로 쌌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결혼하고 나서도 매년 트리를 꾸몄다. 11월이 되면 창고에 꽁꽁 싸매두었던 트리를 꺼내 먼지를 털고 낡은 골판지 상자에서 반짝이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오너먼트를 꺼내 달았다. 자그마한 트리는 몇 번 이사를 가며 조금 더 큰 트리로 바뀌었는데, 이제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생겼으니 나중엔 더 큰 트리로 바꿔야 하나, 하고 환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PVC 트리를 또 들일 궁리나 하고 있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하는 또 하나의 의식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나만의 전통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거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이 그림 파일을 인쇄용에 적합하게 만든 후, 마음에 드는 용지와 규격을 골라 인쇄소에 소량 인쇄를 맡기는, 상당히 전문적(?)인 방식이다. 3년 전부터 만들었는데 첫 해에는 남편과 나 둘, 다음 해에는 임신한 나와 남편, 올해는 우리 가족 넷을 그렸다. 가족의 변화와 성장을 담다 보니 어쩐지 빼먹을 수 없게 돼 올해도 미루고 미루다 크리스마스가 거의 다 되어서야 인쇄를 맡겼다. 연하장 개념으로 가족과 지인과 친구들에게 보내야겠다. 그런데 이거 은근히 손편지 쓰는 게 힘들어서 한 번에 세 장 정도 쓰면 손이 아프다. 아이들 돌보면서 틈틈이 쓰려니 아마 정작 보내는 건 설날이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게으름이 미리 발동해 버리고 만다.


그런데, 몇 년 전인가부터 ‘크리스마스’가 ‘홀리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을 의미해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는 이유로 종교적 관점에서 자유롭기 위해 ‘휴일’인 ‘홀리데이’로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스타벅스가 이 ‘홀리데이’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리는데 일조한 것 같다. 회사의 가치관이나 뿌리와 전혀 상관없는 국내 브랜드나 회사에서도 ‘홀리데이 시즌’, ‘해피 홀리데이’ 같은 말을 쓰는 걸 보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12월 25일이 ‘홀리데이’인 것은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석가탄신일도 쉰다. 석가탄신일을 뭐, ‘스프링 홀리데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리하여 ‘홀리데이라는 단어가  반갑지만은 않은 가톨릭 신자다. 코로나 사태와 출산 이후로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성당에 가기가 내키지 않아 본의 아니게 미사에 참석하고 있지 못하지만, 언제나 생각은 하고 있다구요, 하느님 예수님 성모마리아님. 그러니까  해피 홀리데이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할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2019년부터 올해까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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