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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Feb 13. 2024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를 보면서..

제가 의대를 졸업했던 그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메이저과, 지금으로 말하면 소위 기피과를 선택했었습니다. 남녀 가리지 않고 내과는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전공이었고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특히 여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았죠. 제가 선택했던 예방의학도 대표적인 기피과이긴 했으나 이 전공은 예나 지금이나 성적과는 무관한 기피과고요. 


동네마다 소아과가 있었고 한밤중에 분만을 받는 산부인과도 존재했었습니다. 그때는 피부미용이 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없었고 자신의 피부를 위하여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국민들도 없었습니다. 또한 진료 과정 중에 발생한 일로 의사가 구속되고 법정에 불려 다니고 수억 원을 배상해야 하는 일도 거의 없었죠. 의사 일이란 기본적으로 위험한 일이며 명백한 고의나 실수가 아니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사실을 사회가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된 것은 제가 의대를 졸업했던 1989년부터였습니다. 그때 이미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의료수가로 인하여 장차 의료계 전체가 왜곡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직시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낮은 의료수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위 의사들은 매우 잘  사는 듯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 문제가 가진 심각성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죠. 하지만 원가에 못 미치는 의료수가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단위 시간당 가능한 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국가가 의료수가로 통제하지 않는 영역의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법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손보험이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밖에 없는 기형적인 제도가 도입되면서 의료시스템의 왜곡은 더욱 가속화됩니다. 




최근 의료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은 사회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수십 년간 억누르고 있었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것에 불과합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으나 참으로 애매한 시점에 매우 거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보건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관료 조직과 관련 전문가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군요. 이 모든 일의 시작을 찾아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는 한국의 의료보험을 자랑하고 싶어 했던 그들의 원죄가 있습니다. 마치 K방역을 자랑하고 싶어했던 그들처럼.. 


특히 과거 메이저과들이 기피과가 되고 몇 년째 전공의 자체가 없는 현상들을 두고 의사들을 탓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분석입니다. 종종 한국 의사들은 경제적 이익에 민감하여 필수의료가 아닌 미용분야로 빠지므로 과감한 의대증원만이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분들은 의사들 중에 의사 일 자체에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위중한 환자를 진료하고 어려운 수술을 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그런 의사들이 더 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이죠. 


지금까지 배출된 수많은 필수과 전문의가 이미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필수의료를 살리는 일은 딱 2가지만 하면 됩니다. (1) 필수과를 개설해도 생존 가능하도록 의료수가를 OECD평균에 맞추어주고 (2) 진료 중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한 보상책임을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입니다.  이건 전혀 특별한 일도 아니고 의사들의 편의를 봐주는 일도 아닙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제도하에서는 처음부터 갖춰놓고 시작했어야 할 일을 수십 년이 지난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주는 것뿐이죠. 


국가가  <큰 틀만 상식적으로> 갖추어 놓으면 의사다운 일을 하면서 의사로서 보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큰 틀이 비상식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정책도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의사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한 사회분위기는 결국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사-환자 관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영역은 정부에서 과도하게 개입하면 할수록 왜곡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죠. 


인구 천명당  의사수가 어떻게 되든지 관계없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의사 만나기가 가장 쉬운 국가입니다. 그리고 국민 1인당 외래방문 횟수가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대부분 질환들은 환자 자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의사들은 이 과정에서 그 환자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만, 낮은 의료수가에 기반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주객을 전도시켜 버렸습니다. 코로나 사태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스스로 알아서 면역력을 챙기면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두고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비난했었는데, 이는 자발적으로 건강의 주도권을 국가에게 내어준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어느 날 갑자기 던져진 의대 2000명 증원이라는 카드는 향후 한국의 의료시스템, 나아가 사회시스템 전반을 더욱 왜곡시키지 않을까 지극히 우려되는군요. 저는 복지부, 질병청과 같은 공공보건의료 관료집단은 엄청난 혈세를 들여서 쉬운 문제를 어렵게 풀어나가는데 특화된 집단이라고 봅니다. 물론 늘 그렇듯 온갖 통계치로 포장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풀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매번 확인시켜 준 바 있습니다. 애초에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비상식적인 큰 틀에  대한 재고가 없는 한, 조만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아수라장 의료계가 동시에 펼쳐지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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