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세계 최고의 백신접종률과 마스크 착용률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초과사망을 보였던 한국의 오미크론 유행이 지나간 후 여러 분야 전문가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하여 반드시 한국의 방역 및 백신 정책은 복기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메일이었죠. 대부분 어떤 반응도 없었지만 답장을 보내신 분들도 극소수 계셨는데, 그중 한 분이 모 대학의 감염내과 교수님이셨습니다. 제 의견에 깊은 공감을 표시해 주신 그 메일을 받고, 최소한 한국의 모든 감염내과 전공자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2023년 <K방역은 왜 독이 든 성배가 되었나?>를 출판할 때 원고를 보내드리면서 그 교수님께도 추천사를 부탁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사정상 추천사는 힘들다고 고사하시면서 책이 나오면 몇몇 분들에게 꼭 직접 책을 보내라고 당부하셨죠. 거기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감염내과 전공 교수님들의 성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책이 나온 후 보낼까 말까 계속 망설이다 그만 시기를 놓쳐버려서 못 보낸 것이 지금도 아쉽군요.
코로나가 재유행을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사태 동안 언론에 고정출연했던 그 전문가들의 이름을 넣어서 기사를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최근 인터뷰가 주르륵 뜨더군요. 예상했던 대로 그분들은 여전히 마스크와 백신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놀라웠던 기사가 정부가 국민들에게 “겁을 덜 주어서” 안타깝다는 L교수의 인터뷰였습니다.
무엇보다 L교수는 불안과 공포와 같은 부정적 심리상태가 어떻게 인체 면역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아무런 이해가 없어 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유행시 왜 사회에 공포를 조장하는 일을 벌여서는 안 되는지에 대하여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듯 했습니다.
3년 이상 팬데믹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광기에 휩싸이게 한 코로나 사태의 시작은 공포였습니다. 처음부터 무증상과 경한 증상이 대부분이었던, 고령의 기저질환자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위험했던 호흡기계 감염병을 상대로 락다운, 학교폐쇄, 동선추적, 거리두기, 마스크 의무화, 백신 반강제접종과 같은 일을 각 국가가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먼저 대중의 공포를 극대화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은 사회의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았는데, 확진자 최소화라는 K방역의 목표를 위해서는 공포를 이용하는 것만큼 비용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미크론 유행이 올 때까지 자신들의 목표가 부질없는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공포와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갔죠.
그런데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유행시 사회에 공포 조장을 해서는 안 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연 감염을 직접 경험하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변이하면서 사람대 사람 전파를 하는 호흡기계 감염병은 일정 주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환자수의 증가와 감소를 반복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인구집단에서 환자수 감소를 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증가가 선행되어야만 하죠.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켜 주어야만 어떤 시점이 되면 일시적 집단면역에 이르면서 감소패턴으로 바뀌게 됩니다만, 대중들이 공포에 사로잡히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훨씬 더 길어집니다.
따라서 의료시스템 과부하가 예상되는 경우만 예외일 뿐, 감염병 관리에서 일시적 집단면역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모두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행위로 봐야 합니다. 일견 보기에는 전파를 막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은 공동체를 위한 선한 노력이고, 마스크니 뭐니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자연 감염 경험을 가졌던 건강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회는 다음번 유행을 가볍게 지나갈 수 있으며, 특히 자외선이 강한 여름철 유행은 더 심각한 겨울철 유행을 가볍게 지나가기 위한 일종의 자연백신접종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최신의 바이러스로 만들어진..
호흡기계 감염병들은 대부분 1년을 주기로 증가와 감소를 반복합니다만 코로나사태 이후 이 패턴에 심각한 교란이 온 듯한 조짐이 보입니다. 단 하나의 바이러스를 통제해 보겠다고 오만한 인간들이 벌였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방역 및 백신 정책의 부산물이죠. 이미 많은 국민들이 감염병은 무조건 피하고 안 걸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세뇌되어 버렸기 때문에 예전의 패턴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고요.
현시점 L교수가 “겁을 덜 주어서" 안타깝다와 같은 놀라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코로나사태에 대한 어떤 복기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L교수뿐이겠습니까? 코로나사태 시 한국의 방역 및 백신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그 전문가들이 현재의 감염병 패러다임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는 감염병 유행 조짐만 보이면 공포조장을 장려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지구상 유일무이한 국가로 남아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