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와 소고기 세트

마음속에 그린 그림

by 블루비얀코

얼마 전 설날 즈음, 잡지사서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후배로부터 명절 선물을 보낸다는 톡을 받았다. 잡지사를 떠난 지 4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연말연시와 명절에 항상 먼저 인사를 해오는 그 후배가 늘 고마웠었는데, 이번에는 선물까지 챙겨 보냈다 하니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리 선물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 후배 본인이 얼마나 책임이 큰 자리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알기에, 퇴사 후 4년이 가까워지는 상태, 그것도 업계에 같이 남아 버젓한 명함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아닌, 애엄마로 돌아가, 자신의 일하는 영역에 그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나에게, 단순 카톡 인사가 아닌 공들인 선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니. 명절 전 유일하게 내 이름이 적힌 채로 배달 온 그녀가 보냈다는 소고기 세트를 받아 든 내 마음은 단순한 고마움을 넘어선 어떤 것이었다.


예전 잘 나가던 시절, 셀 수 없이 많은 선물상자와 고급 선물 안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잔잔하면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그러면서 아직까지 마음속 한켠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감동의 정체가 사뭇 궁금해진다.


어떤 순간이었을까? 어떤 순간들이 그녀의 마음속을 터치했기에 이렇게 오래, 그녀와 나는 이렇듯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년 전으로 마음속 타임머신을 돌려, 그녀와 내가 함께 들어있는 추억의 장면들을 훑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잡지사 CEO로 일하던 시절, 그 회사 대표매체의 부편집장이었다. 오랜 기간 그 매체의 편집장을 맡았던 직원이 그룹 내 다른 자리로 이동하면서, 나는 회사 간판 매체의 편집장 교체라는 쉽지 않은 상황을 그녀와 같이 겪었다.


라이선스 잡지의 편집장을 교체하려면 그 프로세스는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하다. 일단은 몇 명의 가능성 있는 인물을 검토해서, 최종 후보자를 골라 매체 본사에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낸 후, 모든 인터내셔널 임원들과의 인터뷰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만 편집장 선정이 가능하다. 그 매체는 프랑스 매체였고, 운영사 자체는 미국 회사였기 때문에, 이 후배는 프랑스와 미국 양쪽 본사의 까다로운 인터뷰 과정을 통과해야만 편집장으로 임명될 수가 있었다. 한국 쪽 본사의 승인은 그다음 과정이었다.


그녀는 가녀린 몸매에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재였다. 꾸미지 않은 듯, 늘 우아하고 지적인 '프렌치 시크' 그 자체였다. 패션에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기억되는 매 순간의 선들이 간결하고도 기품이 있었는데, 특히 절제된 말과 행동이 그랬다. 어떤 후보보다 우아함을 보여주는 프랑스 잡지의 편집장으로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오랫동안 잡지업계에 일하면서 기억하는 '가장 우아한' 두 명의 편집장이 있는 데, 한분은 패션지 보그의 초대 편집장을 지낸 분이셨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이 친구였다. 글도 그 사람을 그대로 반영하지만 잡지 또한 그 내용과 만듦새는 편집장의 취향과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친구가 새로운 편집장으로 선발되어 자신의 우아함을 마음껏 잡지 전체에 펼쳐 보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나는 그녀가 보내온 소개글을 몇 시간을 들여 번역해서 본사에 보냈다. 가능한 그녀의 장점이 최대한 부각되게 하고 싶었다. 시차 때문에 인터뷰는 아침일찍이나 저녁 늦게 이루어졌고, 인터뷰 과정 내내 나는 마치 동생을 도와주는 언니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온 맘을 다해 그녀를 도왔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공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정함을 잃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편집장의 역할이 매체의 성패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그리고 그 매체의 성패가 CEO로서 나의 성과에 얼마나 큰 역할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기에, 이미 그녀에게 마음이 기울기 이전 냉철한 검토의 시간은 거쳤던 것 같다.


다행히 그녀는 모든 인터뷰 과정을 통과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을 꼭 닮아 그 매체 역사상 가장 '우아한' 한국판을 만들었다.


퇴근길, 내 사무실과 같은 층에 있던 그 매체의 편집부에 들러 벽에 붙은 보드가 한 컷, 두 컷의 이미지들로 채워지는 것을 보며, 자유롭고 크리에이티브한 에디터 한 명 한 명과 아낌없는 칭찬도 하고 때로는 실없는 농담도 해가며, 팀을 한 바퀴 돌면 마지막엔 늘 짧게라도 편집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그저 눈빛 교환만으로, 쉽지 않은 여러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믿는 그런 선후배로 꿈같은 2년여를 같이 일했다.


내 기억 속에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으로 남아 있는데, 아마도 그 친구에게도 그 순간들의 기억이 오랫동안 좋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화려한 명품과 고급 선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만났던 그녀가, 그 세상을 떠난 나에게 선물한 소고기 세트는 그 세상의 모든 거품이 다 빠지고 오롯이 '당신과 나의 같이 했던 시간들을 아직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는 '진국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마움을 넘어선 이 감동을 어찌 표현해야 하나. 그저 비슷한 선물세트를 보내는 것으로 답을 하기엔 이 감동과 후배의 마음이 너무 소중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인인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고독한 생활중에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책을 보내주며 위로했던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세한도>를 그렸다. '한 겨울이 와서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논어>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그려 넣었다. 세상의 이치와 작가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이 그림은 김정희의 대표작이자 국보로 지정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마침 집 근처 박물관에 코로나로 전시기간이 연장된 세한도의 전시회를 들렀다. 푸른빛의 아름다운 비단으로 시작되는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고, 작고 거친 종이에 간결하지만 힘이 넘치는 선들로 그려진 김정희의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현대시대 추상화와도 같은 그림 옆에는 조심스럽게 줄을 치고 한 자 한 자 마치 그 후배를 위해 기도를 하듯 정성을 들여 써 내려간 김정희의 글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가장 유려하고 힘찬 날갯짓으로 유유히 세상을 날던 매가 두 날개가 묶여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느꼈을 답답함과 억울함,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생각해준 후배에게 느꼈을 숭고하기까지 한 고마움. 200년 전 그의 뼈저린 감정의 소용돌이를 조금은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레 후배가 보내온 소고기 세트에 대한 화답을 글로 하고 싶어 졌다. '한겨울에도 푸르른' 그의 아름다운 마음이 내 영혼에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 고마움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글과 함께 따뜻한 봄날 단맛이 든 제철과일 한 상자를 같이 보내면 내 마음속 감동의 빚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누구에게도 결코 만만치만은 않은 세상을 살면서, 한 사람의 '온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을 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끊어내기 어려운 그 어떠한 끈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매 순간 살면서 오늘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오늘 그와의 관계에 온 마음을 다하면, 앞으로 다시 올 지 모를 또 어떤 겨울날에, 200년 전 김정희가 느꼈을, 그리고 올 명절 소고기 세트가 나에게 준 그런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감동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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