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far would you go for love?

사랑을 위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by 블루비얀코

1월 1일 매해 가던 큰집 제사에도 모이지 말고 각자 자리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기리자고 했다. 남편은 간단하게 준비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떡국, 전, 고기 등 이것저것 내심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평소에 하지 않던 차례상 차리는 것에 신경이 쓰여, 이틀 전부터 장을 보러 다녔다. 음식 차리는 것에 온통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생각하며, 전이며 나물이며 사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며 준비를 했다. 동네 반찬집보다는 그래도 백화점이 낫겠지 하며 백화점 식품부 반찬코너를 들렀는데, 떡국을 쉽게 끓일 수 있게 만든 밀 키트가 근사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떡국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 여름이라도 떡국만 끓여주면 좋아라 하는 남편을 위해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떡국이다. 고기 국물에 떡을 쫄깃하게 끓여 내놓고, 맛있는 김치 하나면 다른 반찬도 필요 없기 때문에, 결혼한 후 16년간 수도 없이 끓였고, 이젠 별다른 신경 쓰지 않고도 수준급 이상의 맛을 낼 수 있는 메뉴다. 웬만한 떡국 전문점의 떡국도 엄마표 떡국보다는 못하다며 치켜세울 때엔, 두 어깨에 힘이 딱 들어가곤 한다.


그런데 멀쩡하게 육수, 떡, 만두에 고명까지 잘 준비된 밀 키트를 보니 마음이 움직였다. 떡국 고명 만드느라 분주한 순간들이 마음속으로 왔다 갔다 하며 2만 원짜리 밀 키트를 두 개나 사 왔다.


새해 아침, 육수 국물 비닐을 뜯어 맛을 보니 왠지 모르는 시큼한 맛이 났다. 상할까 봐 보존제를 넣은 듯했다. 끓이면 괜찮을까 했는데 재료를 하나 둘 넣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상에 오른 떡국의 이상한 비주얼과 맛에 식구들은 모두 떡국 맛이 이상하다며 얼굴 표정이 찌그러졌다.


1월 1일 아침 한 해의 제일 첫끼니에 먹지 못할 음식을 내놓은 아내에게 남편은 침묵을 지키며 찬밥에 나물로 배를 채웠다. 순간 식구들에게 너무 미안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음식의 하나가 떡국인데, 순간적으로 밀 키트의 화려한 포장에 속아, 1월 1일 아침상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4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그 떡국을 모조리 음식쓰레기통에 넣으며 “다시는 내가 그 백화점에 가나보다. 백화점도 이제는 끝이네. 식품부가 그나마 사람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이 입맛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이런 걸 비싼 돈 받고 팔다니 이제 백화점은 다 망할 거야!” 하며 격앙된 소리로 어줍잖게 ‘유통의 미래’를 논하며, 남 탓을 해봤지만, 이미 상한 자존심은 회복이 되질 않았다.


결국 떡국떡을 다시 사서 고기 국물 내고 점심에 떡국을 다시 끓여 명예회복을 했지만, 1월 1일 첫 끼니를 망쳐버렸다는 찝찝함이 계속 남아있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그래도 내가 꽤 괜찮은 주부인데, 어쩌다 1월 1일부터 엉터리 밥상을 차리게 된 걸까? 며칠을 두고, 곰곰이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니 결론은 ‘하기 싫었던 거다!’


연말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면서,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남편 또한 외식이 꺼림직하다해서 도시락까지 싸면서, 하루 종일 가족들 밥 먹는 치다꺼리를 해 온 게 몇 달인 지. 차리고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다음 끼니는 뭘 해 줘야 하나 고민해야 하고, 또 차리고, 먹고, 치워야 하는 ‘돌아서면 밥’돌 밥의 삶을 챙기는 생활에 대해 피곤이 꽤나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시어머니 모셔 다가 밥해드리자며, 이것 저것 차례상 메뉴를 불러 대는 남편이 얄미웠던 거다. 그래서 남편이 특히 좋아하는 떡국에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거다.


결국 남편이 잘못이다! 언제나 나의 잘못의 근원에는 그가 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나의 ‘엉터리 밥상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모 그럴 수도 있지. 평소에 너만큼 하는 엄마도 없는데”


“엄마는 살면서 하기 싫은 일 없었어요? 그땐 학교급식도 없어서 삼 남매 도시락도 매일 아침 싸야 하고, 할아버지랑 같이 살아서 매일 할아버지 밥상도 차려드려야 하고 했는데?” “글쎄. 그때는 그냥 정신없이, 해야 되는 일인 줄 알고 했던 것 같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어.


요즘은 세상이 다른데 뭘. 너 정도 하면 잘하는 거야! "


엄마랑 전화를 끊고, 이 어이없는 1월 1일을 기록하고 싶어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내 뜻과 달리 펜을 잡은 내 마음은 엄마의 일생 안에서 엄마의 마음을 상상하고 있었다.


엄마가 살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반찬가게도 없는 시절에 16년간 매일 아침 반찬을 만들어 삼. 남매 도시락을 쌀 때였을까?

바깥 음식은 소화가 안된다며 평생 집 밥만 고집하신 시아버지를 30년간 모시며, 매일 저녁을 지을 때였을까?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안 제사를 지내며, 일주일 전부터 김치. 깍두기 하고, 장보고 음식 만들며 30명이 넘는 아버지 형제 팔 남매와 그 식솔들을 먹이는 일이었을까?

유독 냄새에 민감해, 비행기만 타도 화장실 냄새, 음식 냄새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13년 동안 전신마비로 누워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의 대소변을 매일 받아내는 일이었겠지.

그런데도 어떻게 매 끼니 고추장찌개가 먹고 싶다, 녹두전이 먹고 싶다. 요구해대는 남편이 먹자는 거 다해 줘가며 자식, 손주 올 때마다 밥상을 차려주는 걸까?


도대체 엄마는 그 일들을 어떻게 할까?


아마도 엄마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과 신의 중간쯤 어디에 속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천사(天使), 그게 엄마의 정체인가 보다.


그래서 돌부처상에서 엄마 얼굴이 보이고, 막내 조카 지윤이는 할머니 생신 카드에 할머니를 천사로 그렸나 보다.


How far would you go for love? 당신은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한 명품 주얼리 브랜드의 광고 카피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값비싼 주얼리나 다이아몬드를 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랑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의 일생을 짚어가며 엄마가 가장 하기 싫었을 듯한 일들을 더듬어보니 '엄마의 사랑의 크기는 박물관에 전시될 세기의 보석인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나의 가족에 대한 사랑의 크기는 1캐럿에도 못 미칠 것 같다.


1월 1일 형편없는 아침상을 기억하며, 나의 사랑의 캐럿을 좀 더 키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못 먹을 새해 첫날 아침상으로 인해 어쩌면 와이프가, 엄마가 더 잘해줄지도 모르니, 그 밥상은 우리 가정을 한 해 더 많이 사랑하게 만들어줄 ‘더 큰 캐럿의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가졌던 그 찝찝함이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