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 of Love

아버님의 넥타이 쿠션

by 블루비얀코

한 방송사를 통해 화려하게 방영을 시작했던 판타지 사극 드라마가 역사왜곡으로 모든 광고주로부터 손절을 당하고 방송 취소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다.


역사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역사왜곡이란 상황에 이토록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초.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부모를 욕하는 일명 '패드립'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폭력으로 여겨지는 걸까?


우연히 책장에서 발견한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역사를 전공하고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살던 저자가, 한국 역사 속 우수함을 단 7장면으로 정리해, '한국인 자존심 회복 프로젝트'로 집필한 책이다.


'힐링 한국사'라는 소개만큼, 책을 읽고 나니 우리 민족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어깨가 쭈~욱 펴지는 느낌이 든다.


아 역사란 이런 거구나! 역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갖는가가 한 사람의 어깨를 펴지게도 구부정하게도 만드는구나!


언젠가 EBS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세계의 교육현장 - 세계를 움직이는 힘! 미국의 유태인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정통 유태인 가정에서는 결혼 후 1년간,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회당에 나가 경전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아버지의 영성이, 가정의 행복과 자녀교육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면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모세오경과 탈무드, 토라 등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을 교육한다.


구약성경 초반에 나오는 모세오경은 유대민족의 역사 이야기이다. 이 역사이야기를 아버지가 외우고,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교육시켜 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삼국유사를 아버지가 외워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교육하는 상황이라고 할까?


유태인 교육의 핵심은 부모에게서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와 삶을 통한 정체성 교육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너는 신에게 택함 받은 민족의 후손이란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미리 나가 이겨주신단다!"를 부모로부터 매일 듣고 보고 자란 아이가 갖게 되는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이 오늘 날 전세계를 주무르는 유태인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버지는 팔 남매 중 맏아들이셨고 엄마는 평생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안 대소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30살이 넘을 때까지 사셨으니 엄마는 20대부터 50대까지 30여 년을 시부모를 모시고 사신 셈이다. 내가 결혼을 해서 시댁 어른들을 대하고 결혼생활을 해보니 엄마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을 편두통으로 타이레놀을 달고 사셨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나 또한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야 했기에 식사 자리에서 말도 편하게 못 하고, 더운 여름에도 핫팬츠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으시고,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밖엔 다니시지 못하신, 작은 자영업을 하시며 평생을 사신 할아버지가 딱히 존경스럽지도 않았다. 말수가 적으신 할아버지와 교감을 할 기회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엄마의 무거운 짐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함께 산 세월의 진가는, 훗날 기업에 들어가 고위 임원들을 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나이 지긋하신 회장님, 사장님 앞에서 조심스럽긴 했지만 행동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을 할아버지와 살면서 나이 드신 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몸에 익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였는지 직장생활 내내윗 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이가 50쯤 되고 새벽에 일어나 몸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성경을 읽으며, 공부가 좋아 뒤늦은 나이에 책에 몰입하게 되면서,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운동을 하시고, 불경을 읊으시며 책과 공부하기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내 안에 할아버지의 DNA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이후로는 애써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들, 긍정적인 생각들을 소환하려고 한다. 그 노력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위한 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여 쯤 지났을 때, 저녁을 같이 먹자고 불러낸 남편의 옆자리엔 시아버님, 시어머님, 그리고 남편의 조카들이 같이 나와 있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어차피 교재를 할 바엔 가족들을 보는 것이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당시 70대 후반이신 시아버님을 대하는 것도 별로 어색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를 대했던 기억대로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감사하게도 시아버님은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아버님은 너무나 스위트 하신 젠틀맨이셨다.


한 번은 아버님과 남편과 같이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앉았는데, 아버님과 남편은 커피를, 나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이 나오자 나는 아버님께 드셔 보시라고 권했다. 아버님께서는 나는 찬 거 싫어한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반쯤 먹다가 놓았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그제야 숟가락을 드시고 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드시기 시작하시더니 그릇을 싹 비우셨다. 아버님은 며느리가 먹지 못할까 봐 드시고 싶은 걸 싫다고 하시고, 내가 양껏 다 먹은 걸 확인하시고는 그제야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드시고 계시는 거였다. 그렇게 아버님은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많으신 분이셨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님은 80세에 보신 아들 손주를 너무나 아껴주셨다. 한 번은 아버님 옆에서 놀던 큰 아이가 넘어지는 걸 잡아주시려다, 아버님 허리뼈에 금이 가서 두 달간 병원에 입원을 하셔야 됐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님은 큰 애를 애지중지 아껴주셨고 나는 내 아이를 그렇듯 아껴주시는 아버님이 진정 감사했다.


그렇게 가족 모두의 등불과도 같았던 아버님께서 2008년 82세 생신을 지내시고 돌아가셨다. 시댁 식구들 모두 마음의 빛을 잃은 듯했다. 특히 어머님이 그러셨다. 평생 아버님의 그늘에서 아버님을 의지하며 아버님의 부인으로 사시는 것이 삶의 의미셨던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등대를 잃은 배와 같은 모습이셨다.


아이들을 낳고 키워보면 아이들 안에 어찌 두 집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성향이 골고루 나누어져 들어있는지 유전자의 힘에 대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시댁 쪽으로만 보자면 큰 아이는 아버님을, 둘째는 어머님을 많이 닮았다. 둘째는 외모로는 어머님을 쏙 빼닮은 남편을 쏙 빼닮아 어머님과 닮은 점이 많다. 식성도 닮아서 국물만 마시고 건더기는 그대로 남겨 놓는 국그릇까지 꼭 빼어 닮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님이 안 계시는 현실의 상황을 잊고 싶으신 듯, 조금씩 조금씩 건망증이 생기시더니 88세이신 지금은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어쩌다가 같이 식사를 하시거나 우리 집에 며칠을 묵으시면 아이들은 하신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고, 방금 전 상황도 기억 못 하시는 할머니를 뵈며 놀람 반 걱정 반의 표정을 짓는다.


얘들아~ 하시며 지갑서 만 원짜리를 한 장씩 건네시고 30분도 안돼 또다시 얘들아~ 하시며 지갑을 여시는 할머니를 뵈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난색을 표한다. 어떨 때는 "아까 주셨어요." 하기도 하고 너무 무안해하실까 봐 그냥 "감사합니다." 하며 받기도 한다.


그저, 아이들 기억 속에 할머니가, 기억이 희미해지시면서까지도, 용돈을 주시고 싶으셨던 그 마음만은 꼭 새겨지기를 바란다. 어쩌면 나 또한 어머니 나이가 돼, 기억력이 흐려지고 실수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황서도 우리 아이들은 덜 당황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루는 집에 오신 어머님이 아버님이 못 내 그리우신 지 "아버님 안 계시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 하셨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어머님이 안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버님 돌아가신 후 차마 버릴 수 없어, 나중에 애들한테 물려준다며, 상자에 넣어 옷장 한편에 잠자고 있는 아버님의 넥타이들이 떠올랐다.


"아버님의 넥타이로 쿠션을 만들어 어머님께 드려야겠어!" 남편은 좋은 생각이라고 응원했다. 아버님의 넥타이들을 골라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난생처음 재봉틀 앞에 앉았다. 작업하는 내내 어머님의 반응을 상상하며 다치지 않고 제대로 모양을 내느라 조심스레 작업을 했다.


쿠션을 완성해,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보자기에 싸인 쿠션을 어머님께 드렸다. 보자기를 푸시며 십여 년 만에 그 그리운 남편의 넥타이를 만나신 어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로 "기가 찬다! 기가 찬다!" 를 연발하시며 쿠션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셨다.


돌아보면 그 일은 어머님만을 위해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있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삶의 의미가 되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나 또한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는 대한민국 엄마이니까.


영화 '미나리'를 통해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그의 천연덕스런 연기를 통해 보는 사람 모두가, 서툴러도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던,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며 자신들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들과 화해를 하게 하고 스스로 어깨를 펴게 하는 그 힐링의 힘이 아닐까?


부디 윤여정 배우의 수상소식이 드라마 역사왜곡으로 화가 난 우리 대중의 어깨를 다시 한번 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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