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피터슨 목사님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믿고 읽는 저자인 데다, 책의 기획과 디자인이 좋아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책상에 두고 매일 한편씩 음미하며 읽어가고 있다.
책의 서문에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라는 제목의 시가 나온다. 그 시는 세상 모든 존재의 각자의몫을 해내기 위한 몸부림의 순간을 그리며 우리에게도 '주어진 자기 몫을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총새? 불이 붙는다고? 검색해 보니 물총새는 배 부분이 밝은 오렌지색이라, 물속 먹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몸을 내리꽂을 때 모습이 마치 불덩이가 물속으로 떨어지는 듯 보인단다. 사진으로 보니 그 쨍한 오렌지 빛이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선생님께서 캔버스를 건네시며 아크릴화를 권하셨다. 캔버스는 처음이었다. 나무 위에 천을 입혀 만들어진 캔버스를 손에 잡는 순간 종이와는 다른 묵직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수채화 물감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아크릴 물감의 성질이 부담감을 줄여줄 것 같기도 했다.
아크릴 물감은 빠르게 건조되고 일단 건조되면 색이 섞이지 않기에 위에 얼마든지 티 안 나게 수정을 할 수도 덧칠을 할 수도 있단다. 도구도 붓, 나이프, 손가락 그 어떤 것도 상관없단다. 정확하게 그리지 않아도 되고 맘 가는 대로 굵은 선으로 물감을 얹으면 된다고 했다.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캔버스에 젯소라는 흰색액체를 바른다. 표면을 매끄럽게 해 주고 보존을 도와준다고 했다. 말하자면 화장할 때 파운데이션 전에 바르는 베이스메이크업의 역할을 하는 듯. 이번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하얗디 하얀 젯소를 캔버스에 고르게 바르며 기대에 부푼다.
배경색을 먼저 칠한다. 큰 붓을 들고 섞어놓은 물감을 캔버스 위에 턱턱 얹어가며 와일드한 붓놀림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물감을 밀어댄다. 직선으로, 원으로, 붓을 뉘어서, 세워서 마음대로! 돌돌 말은 휴지로 동글동글 돌리며 깊이감을 더한다. 오! 틀을 벗어난 자유가 주는 행복감!
스케치도 연한 색 물감으로 대강의 윤곽을 잡아주면 된다. 물총새 등 쪽의 푸른색을 표현하며 이번에도 좋아하는 파랑의 여러 가지 톤을 원 없이 써본다. 쨍한 오렌지를 표현하려고 레드와 오렌지, 옐로를 섞어 색을 써가니 입에 침이 고인다.
새를 그릴 때 중요한 건? 눈과 부리란다! 마지막까지 남겨 둔 눈과 부리를 가는 붓으로 그려 넣었다. 나뭇가지 위의 물총새가 비로소 생명을 얻은 듯, 다음 순간 노려보던 물속 먹이를 향해 불이 붙 듯 몸을 매다 꽂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늘 그림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초보자의 한계가 느껴진다. 터치가 더해질수록 그림이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답답해지는 느낌이 든다. 완성도의 4분의 3 지점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대개는 빛과 어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형태를 조각조각 잘라진 채로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어두워져 답답해진 물총새의 어깨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빛을 그려준다. 빛의 은총이 내리니 그림이 확 살아난다.
"너 그린 그림 중에 골라서 내 방에 걸게 좀 가져다줘!"
그림이 완성될 때마다 카톡으로 사진을 엄마한테 보내드렸는데 마음에 드셨었나 보다. 엄마방에 걸어드리면 좋겠다 싶은 따뜻한 그림들을 추려 액자에 넣어 친정에 가지고 갔다. 물총새 그림도 좋다고 하셨는데 어머니방에 걸어드리기엔 그림의 에너지가 좀 강할 것 같아 보여만 드리려고 가져갔다. 그런데 웬걸! 그림을 꺼내놓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조카가 내게 묻는다.
"고모 그 그림 저 주시면 안 돼요?"
몇 주를 꽤나 공을 들인 그림이어서 그랬는지 얼른 "그래!" 하는 답이 나오지가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데, 조카의 다음 말에 "오 그래!" 할 수밖엔 없었다.
"공부하기 싫어질 때 그 그림을 보면 공부를 하게 될 거 같아요!"
이 그림을 보면 공부가 하고 싶어 진다고? 소오름! 애초에 물총새를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책에서 본 그 시로 인해서였다. '존재의 몫'을 하라는 그 시인의 외침이, 그리고 먹이를 향해 불이 붙듯 자신의 몸을 메다 꽂는 물총새의 모습이 내 영혼을 흔들어 그림을 그렸던 건데. 중학생 조카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자신의 몫인 공부가 하고 싶어 지겠다고 하니!
내 감동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구나! 설명하지 않아도, 시각의 언어는 그 자체로 에너지를 담아,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거는구나! 말보다 강한 무언의 외침으로.
직사각형의 삭면을 배치한 추상화로 유명한 미국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내 그림을 보고 우는 관객은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종교적 체험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거장의 경험에는 비교할 것이 못되겠지만 그림을 통한 조카와의 소통의 경험이 나에게는 전율로 다가왔다.
조카 녀석 똑똑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영민하다니! 기특하기는.... 그림을 그린 지 일 년 남짓된 초보자 고모에게 큰 희열의 순간을 선물해주었다. 그림값은 몇 배로 하고도 남았다.
그림을 그릴 때, 한 과정 한 과정이 재미 있는 치유의 과정이라 느끼며 '혼자만의 독백'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불어 상상치도 못하던 '멋진 세상과의 소통의 채널'이 열린 듯싶다. 이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은 줄이고.... 붓을 들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