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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Jan 11. 2024

무슨 운동을 매일 해.(2)

2023년 4분기는 프친놈 모드로 4개월

매일.

매일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일주일 중 하루라도 빠지면 그것은 ‘매일’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 정도면 ‘매일’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99점은 100점이 아니라 여기며 스스로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시절을 보냈다. 신체에 만족한 순간이 없었다.


고지식한 인간이었다. 강박에 가까운 고지식함은 세월이 지나며 조금은 유연해졌다. 교직 4년 차쯤  학교에서의 힘듦을 퇴근 후 네 캔 만원으로 풀기 시작했다. 점차 술을 즐기게 되었다. 코르페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내게 술은 그저 다이어트를 방해하고 정신을 탁하게 만드는 백해무익한 물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맥주뿐만 아니라 청하, 소주, 와인, 막걸리, 위스키까지 다양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술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퇴근 후 마시는 술은 퇴근 후 운동을 못하게 했다. 취하면 평소 억제해 온 식탐도 폭발했다. 폭음, 폭식, 다음 날 아침 막심한 후회가 반복되었다. 그러한 반복은 허리둘레의 나이테로 남았다. 두터워진 허리둘레만큼이나 양심도 두터워져 운동을 빼먹어도 죄책감이 덜 느껴졌다. ‘운태기(운동 태만기)’는 운동만 안 하는 시기가 아닌 ’음주와 무절제한 식사가 이어지는 시기‘였다. 적당히 먹고 운동 안 하는 옵션은 없었다. 높은 식욕을 참는 삶이었다. ‘가짜 식욕’에 속아온 나날이었다. ‘가짜 식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8 체질’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이다. 2021년 가을, 엄마의 소개로 8 체질로 유명한 한의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체질식을 시작했다. 내 체질에 맞는 음식을 지켜서 먹다 보니 속이 편하고 살도 잘 빠졌다. 다이어트의 상식으로 여겨진 식단이 아니었는데, 내 체질에는 잘 맞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예를 들면 나는 쌀보다 밀가루가 맞고, 쌈야채보다는 뿌리채소가, 해산물보다는 쇠고기를 먹어야 건강하다.


각종 다이어트 (마황 들어간 한약, 저탄고지 등)로 식단을 조절하더라도 운동을 병행하지 않는 방법은 결국 요요가 왔다. 그렇게 찐빠찐빠 시기를 이어오다가, 8 체질을 시작한 2021년에는 PT를 받으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트레이너 선생님의 추천으로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 2급’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2023년 나는 생체 2급 필기에 합격하게 된다. 2022년에는 우연한 기회로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크로스핏 주 3회, 헬스 주 3-4회를 하며 8 체질식을 이어갔다. 체력이 급격히 좋아졌고 체형도 여리여리 탄탄한 내가 바라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때 크로스핏 코치님의 소개로 F45라는 운동을 알게 되었다. 2023년 4월에는 F45(이하 ‘프사오’)를 체험해 보았다. 8월에는 등록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운동은 프사오와 같은 HIIT(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홈트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도 내가 좋아한 장르이기도 하다. 그렇게 프사오에 등록해서 매일 프사오를 하는 ‘프친놈’의 삶을 약 4개월간 살았다. 퇴근-프사오-귀가 루틴이 이어졌다. 하지만 귀가 후 한 잔을 뿌리치지 못했다. 술만 끊으면 몸짱일, 건강한 돼지였다. 건강한 돼지가 절주를 시작한 계기는 ‘45일 챌린지‘였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얼굴을 보고, 하이파이브를 유도당하는(?) 프사오를 하다 보니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친해졌고 ‘챌린지’라는 것을 함께 참여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것은 추가로 돈을 내고 45일 동안 ‘식단, 운동, 수면 시간, 마신 물의 양, 잘한 점, 후회하는 점’등을 형식에 맞게 밴드에 매일 쓰면 코치들이 전문적 코멘트를 달아주는 이벤트였다.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꽤 잘 맞았다. 조용한 관종으로서 인스타 일상 계정과 운동 계정을 따로 운영하며 디지털 장의사가 울고 갈 만한 데이터를 기록으로 남기는 헤비 업로더인 내게 기록은 이미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록만 했지 ‘성찰’ 하지 않았는데, 하루 단위로 ‘식단, 수면, 운동’을 종합적으로 성찰하도록 만드는 게 챌린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또한, 전문가(코치)의 피드백이 있는 게 좋았다. 코치는 어제 챌린저가 얼마나 못 자고, 잘 못 먹었는지 등을 알다 보니 라포 형성도 빨랐고 조금 더 신경 써서 운동을 봐주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챌린지에 함께 참여한 챌린저들은 매주 다른 조에 들어가 매일의 미션을 수행하게 프로그램되었다. 아마 챌린저들은 45일 동안 절친이나 부모보다도 그들이 먹고 경험한 감정을 나누며 더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재미를 나도 느꼈고, 즐겁게 참여했다. 프친놈 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바디 점수가 크게 올랐다. 눈에 띄게 체형도 좋아졌고 자연히 절주에도 성공했다. 덤으로 눈바디 변화 부문에서 우승해서 상품도 받았다.

2024년 1월, 현재는 식단도 운동도 음주도 균형을 맞추며 각각의 즐거움을 느끼려 한다.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아마 평생에 지속되겠지. 프친놈 모드에서는 빠져나와 원래 매일 즐기던 쇠질을 하며 클라이밍, 라틴댄스 등 다른 운동들에도 눈을 돌리는 중이다. 교무실에서 잼 뚜껑을 연다든지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남자 선생님을 찾는 여자 선생님들을 자발적으로 도와드리는 중이다. 가능하고도 남으니까. 건강하게 기능하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는 삶을 이어가야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이 있던데, 나는 ‘건강하고 등이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무슨 운동을 매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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