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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l 25. 2023

무작정 쓰GO, 거침없이 발행하GO(고 고 고)

  

 브런치를 시작하고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브런치 초보라 언급하기가 멋쩍지만, 시작하고 2주까지는 하루에 3개씩 발행하기도 했다. 브런치에 작가별 알람 꺼두기 기능이 있는 건 알지만 꺼두지 않는 분도 계시니 알람을 너무 울려대서 민폐란 생각까지 들 정도로 썼다. 즐거우니 죄송한 마음을 살짝 한구석으로 두고 애써 외면했다. 우울한 잿빛 일상에 빛을 선사한 브런치였으니 안 쓸 수가 없었다.

  아마 얼굴을 보이고 말을 해야 되는 공간이라면 그렇게 살짝 정신을 놓은 듯 글을 써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익명성이 확보되기 때문에 그저 신나서 마음 가는 대로 쓰고 발행하고 있었다.


  가끔 구독자가 많은 분들을 보면 부러워서 어떤 사람들이 구독하나 뒤져 보기도 한다. 막상 열었는데 구독자의 구성이 브런치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대다수인 경우도 봤다. 아마 작가님의 지인들일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동원할 지인도 많기도 하다 싶어 신기하기도 하지만, 많아도 지인은 동원해서 구독시키기 싫다. 형제들과 선생님 딱 4분 외에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아예 모른다. 이들 모두가 나의 구독자인 것도 아니다. 뭔가 미흡한 글을 쓰는데 브런치에 글 쓴다고 자랑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더 큰 이유는 이 익명성이 확보된 공간을 즐기고 싶기도 해서이다. 지인을 동원하면 익명성이 확보되는 공간에서 즐기던 행위가 주춤해질 것만 같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또래 동료 선생님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나의 화두는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나이가 되도록 딱히 하고 싶고 몰입할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하고 싶은 것을 못 찾았고, 나이가 들면 더 찾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은 내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 동료들을 붙들고 뭐 하고 사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 M선생님은 골프를 열심히 배우고 계셨다. G선생님은 밭을 사서 농사를 짓고 계셨다. 로컬 푸드를 공급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까지 있었다. S선생님은 방송댄스를 배우며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확 빠져드는 취미가 딱히 없다. 책은 좀 읽는 편이지만 다독자들에 비하면 읽는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고, 영화에 엄청 빠져 즐겨 보는 것도 아니다. 여행을 가면 너무 행복하고 즐겁지만 주도해서 여행을 다니지도 않는다. 키는 크지만 운동 신경은 별로라 운동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배운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한데 이 지역에 성인이 배우는 피아노 학원이 많지도 않다. 그림도 배우고 싶고 소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가지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지만 무엇이 하고 싶은지 정답을 못 찾겠고, 막상 하고 싶은 것도 여러 가지로 시행이 어렵다.


  한마디로 '어중~간한 인간'이다.

  무언가를 아예 못하면 포기를 하겠는데 어중간하게 한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수준. 조금 잘하는 수준인 것들이 태반이다. 확 못하지도 확 잘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덥석 그 세계에 뛰어들지 못하고 또 고민을 한다. 이동 시간이 걸리는데, 애들 밥은 언제 해주나? 집안 살림은 엉망이겠는데. 결국 못하겠네. 비슷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어중간한 상태에 대해 고민도 되고, 하고 싶은 것도 여건상 시작 못하는 그런 상태. 그 상황에서 그나마 글은 일하고 애들 밥 주고 살림하고, 새벽에 깨서 아니면 늦은 밤에 노트북만 켜면 되니 시간적 제약도 공간적 제약도 덜 받는 하고 싶은 일이 된다.


  다작은 잘 쓰기 위한 방법이야라고 혼자서 위안하는 명제를 걸고 열심히 썼더니 글은 100편이 넘었다. 하지만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 건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많다. 반대로 때론 내 글에 혼자 만족하고 좋아하며 이 정도는 됐어할 때도 있다. 둘 다 객관적이지 못한 느낌이어서 퇴근 후 주차장에서 글쓰기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바쁘게 일을 했더니 많이 지쳤는지 생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저 즐겁다고 글을 이렇게 많이 쓰는 게 맞는 걸까? 일정한 주제도 없이 그때그때 생각만 나열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갑자기 글쓰기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작정 쓰기만 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무작정 쓴다고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닌데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글을 쓰는 과정이 물을 얻기 위한 샘을 파는 과정과 같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글이 잘못된 방향을 가고 있을 경우를 생각해 봤다. 물을 찾기 위해 땅을 계속 판다. 열심히 파고 파지만 결국 샘은 못 찾고 시간만 낭비한다. 물이 나올만한 땅을 잘못 찾았거나, 애초에 땅을 파기 전에 도구들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그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짝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 물을 얻으려면 일단 샘을 파기 시작해야 되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된다. 샘물을 못 찾을게 두려워 모든 게 준비된 상태에서 파기 시작해야 된다면 영원히 물을 못 얻게 될 수도 있다.

  

  글쓰기를 관둬야 되나 고민을 했는데 즐거움을 포기하진 못하겠다. 자꾸 평가를 내리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어 하는 성향도 글쓰기에 대해 주춤거리게 한다. 즐거워서 하는 건데 이유를 그리 찾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명확한 주제 의식 아래 한 방향을 향해 쓰면 좋겠지만 그때 그때 생각나는 것일지라도 머릿속에만 둘 게 아니라 정리하고 여러 번 생각해 보고 쓰기를 계속하는 것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방향을 찾아서 차근히 준비하고 싶다. 그렇다고 방향을 찾을 때까지 생각만 하고 손 놓고 있긴 싫다. 일단은 써야겠다. 쓰다 보면 방향이 보이겠지.


 관둬야 될지 고민했지만 결국은 써야 된다가 결론이다.

 써야 될 이유들을 찾아보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도 안 빼고 매일 글을 썼다.

 아들을 안아주기 시작했다. 아들을 바라보던 관점이 바뀌었다. 아들이 측은해 보인다.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니 아들의 결점도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아들이 많이 바뀐 건 아니라 걱정이지만 내가 먼저 바뀌면 아들도 서서히 변할 것이라 기대한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탓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탓해봐야 인생만 서럽고 눈물만 날 뿐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남편과 대화가 많이 늘었다. 남편이 내 글의 조언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화를 많이 하니 싸움이 줄었다. 산책을 하며 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언인가 계속 고민했는데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다.

  글 써보겠다고 더 일찍 깨고 더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달라진 것들이 있기에 관두지 않고 써야겠다.

  물이 나올 장소를 잘 찾고 좋은 도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애초에 모든 일이 결과를 알고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써보기로 다짐한다.



  당분간은 무작정 쓰고 거침없이 발행해 보자. 고 고 고.



<덧붙임>

 괜히 보여줬다.

 또 지적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표현도 지적, 글 흐름도 지적.

 왜 자꾸 자기를 비하하냐고 지적.

 소설이냐? 에세이냐? 글의 정체성에 대해 지적.

 처음 제목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부정적이라고 지적.

 

 아. 이것도 또 깨뜨려야 될 도자기인가.

 당분간 무작정 쓰고 거침없이 발행하려고 했건만, 자신감이 뚝 뚝 떨어진다. 하지만 남편 말이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써야겠다.

 

  어쨌든 남편 덕에 글이 길어지고 처음보단 매끄러워졌다. 하도 옆에서 뭐라 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다시 쓰고 하니 길어지고 처음보단 흐름이 낫다. 긴 글이 좋은 글이다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지만 브런치 시작 때보다 글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글쓰기 전문가도 아닌데 남편의 뜻을 존중해야 되나? 귀 얇아서 왔다 갔다 거리다가 내 글은 어디로 튀어 갈 것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전문가는 아니라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긴 하다. 애증의 남편. 끝까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구나.


 남편 조언 더 이상 안 들으려고 후딱 발행합니다. 결국 발행 후 고치고 또 고치고 하겠네요.

< 좀 길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당신입니다. 박수 쳐 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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