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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May 21. 2024

요즘 말하는 소통은 대체 뭘까?

젊은 교사 시절 초기에 정기적 상담 주간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저 필요한 부모들이 연락하고 선생들도 딱히 학부모에게 연락할 일도 별로 없었다. 우선 휴대폰도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으니까.

요즘은 1, 2학기 정기적으로 상담주간이라는 것이 있고 대부분의 학부모들과 전화든 대면이든 상담이라는 것을 해야 된다.

걔 중에는 아이 담임 선생님이라서 얼굴을 봬야 될 거 같아서 오셨다는 분도 있고, 아이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분도 있고, 숨기기 급급한 분도 있다.


올해는 유독 아버지들과의 상담 전화와 대면 상담이 많았다.

부부가 같이 상담을 오시는 경우에는 상당히 관심이 많으시구나 싶어서 아이의 좋은 점을 강화시키든 부족한 부분을 좀 개선하든 어떻게든 그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이건 나의 오지랖이다. 지 자식도 잘못 키운 선생이 뭘 잘하겠다고 이렇게 설쳐대는 건지...)


올해 한 아이의 부모가 두 분 다 방문을 하셔서 점잖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셔서 그 이후 아이의 문제에 대해서 연락을 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교직 30년이 다 되어가는 나도 가끔 매뉴얼을 망각할 때가 있다. 그건 그만큼 그 부모를 신뢰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아이가 진심으로 걱정되어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교사들의 매뉴얼.

상담을 오면 아이 칭찬을 한다. 쥐어짜 내서라도 칭찬거리를 만들어야 된다. 되도록 네버 절대 허물은 이야기하지 않고 허물이 있더라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긍정성을 끌어내어주어야 한다. 또한 절대 병원 진료나 상담 등을 간접적으로라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선생 당신은 우리 아이를 너무 비딱한 시선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황당한 민원을 받을 때도 있으니까.


올해 뭔 생각인지, 부장을 해서 바빴던 건지, 아들 일로 머리가 복잡해서인지 면담을 온 부부에게 너무나도 솔직해져 버렸다.

"00 이가 장난기가 있는 거 아시잖아요. 어머니도 기초조사서에 쓰셨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어머니다.

"아, 선생님. 그건 저희 아이가 귀엽다는 생각으로 쓴 건데요."

이후 이어진 이야기들. 기억나지만 쓰고 싶진 않다.


아무튼 그 이후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잡아서 던지는 사건이 있었고 가정에서도 주의를 주도록 문자 한 통을 남겼다.

그 이후 이어진 아버지와의 상담 전화.

결론은 

*그 정도는 선생님이 학교에서 알아서 하십시오.

*선생님 스트레스받는다고 지금 이러시는 겁니까?

*상대방 아이의 부모가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연락하지 마십시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지도하셨나요? 저라면 이렇게 했습니다.(들어봐도 신통한 지도 방법도 아닌데 아주 점잖게 유식하게 말씀하신다.)

*남자아이들은 그런 식으로 사회생활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상담 이후 아이한테 자꾸 학교 생활을 묻게 되고 아이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웁니다.


자유롭게 키우시는 부모가 선생 말 하나에 민감해져서 아이를 맨날 다그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면 그럴 필요도, 선생 한마디에도 꿈쩍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서이초 사건과 수많은 시위와 9.4 사태 이후로도 교실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학부모 나이를 알 수 없는 요즘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끽해야 30 후반 40대 초반 학부모한테서 듣기에는 다소 인간에 대한 예의 없는 말들에 무력함을 느꼈던 때였다.


이 또한 지나가고 있고 많이 퇴색되었고 잠시 동안 그 아이 얼굴도 보기 싫었지만,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을까. 오늘 그 아이를 칭찬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네가 뭔 잘못이냐. 덜 철든 부모를 뒀을 뿐인데.'

요즘도 아이한테 매일 학교 생활을 묻는 건지 아이는 요즘 조금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교사가 소통이 안된다고 나무라는 학부모들은 소통이 좋은 말만 듣는 것으로 정의내린 듯하다.

소통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아.... 문자를 보낸 내 손가락을 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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