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맞이하고 삼일이 지난 후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새벽에 잠을 뒤척이는 가운데 목으로 넘어오는 콧물과 속에서 올라오는 가래들을 참기 힘들었지만 비염이 있으니 또 시작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후부터 근육통이 오기 시작하더니 기분마저 가라앉기 시작했다.
28년 직장생활 동안 웬만큼 아파선 병가를 안 냈지만 잠자는 내내 계속되는 근육통을 참을 수 없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병가 신청을 냈다.
나이스에 접속해서 병가 상신을 하고 있는 내 꼴이라니. 남들은 병가 내도 나이스 재택에서 잘 안된다는 이유로 부장인 나한테 대리 신청해 달라 하는데, 아픈 몸 일으켜 내 손으로 상신하고 있는 꼴이라니. 내가 할 일 당연히 내가 하는 게 맞는데, 왠지 모를 설움이 몰려온다.
'왜 나는 뭐든 다 내 손으로 해야 되는 거야?'
뭐 이런 일로 서러울 일인지.
병가를 내고 끙끙 앓는 몸 일으켜 밥 주고 병원에 갔다. 코로나가 의심되지만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권유하진 않으시니 약만 처방받고 왔다. 큰아들은 점심 때까 되자 여지없이 밥 달란 말을 한다.
2차 설움이 또 밀려온다.
'왜 나는 아파도 밥을 차리고 있어야 되지?'
반응이 안 좋을 것을 예상하지만 아픈 몸 핑계로 객기랄 것도 없는 객기를 부려 본다.
"엄마 아프니까 오늘은 네가 좀 차려 먹어."
물론 아름다운 말투가 아니다. 정상적인 아이들과 다르니 이 내 말투가 또 빌미가 될 건 뻔하다.
하루 종일 못 먹고 약만 삼키고 화장실만 왔다 갔다 했더니 하루 만에 2킬로가 빠진다.
'뭐 내일 먹으면 또 그대로 돌아올 테니.'
'퇴직하고 싶다. 왜 이렇게 죽도록 돈만 벌고 살아야 되는 거지?'
처음 교직에 들어설 때의 사명감 따윈 40 후반을 넘어서면서 퇴색되고 있고, 여자도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을 해야 된다는 시대적 풍조에 발맞춰 열심히 살아왔지만 매일 출퇴근에 목숨 걸고 살아야 되는 내 신세가 서럽다.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 깨끗한 집 정갈한 밥상이 그립다.
3차 설움이 밀려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꾸역꾸역 돈을 벌어야 되는 거야. 나도 집에서 둘째 아들 친구 엄마처럼 하루에 2번씩 청소하고 반짝거리는 식기에 정갈한 밥상이나 차려주고 싶다.'
전업주부의 삶도 직장인만큼이나 녹록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직장도 집안일도 엉망인 이 상황들이 진저리 나게 싫다. 관두고 싶다. 하지만 연금은 65세나 되어야 나오니 관둘 수도 없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 학생이니까.
그렇게 몸상태가 엉망인 채로 3일 정도를 보내고 엉망인 몸이 불러온 내적 스트레스와 우리 아들의 내적 스트레스가 번개 치듯 맞붙어 우리 집은 또 한 번 전쟁이 일어난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 같다.
하지만 아픈 엄마를 이해해 주지 않는 아들에 대한 설움, 내 추측이지만 엄마가 지 뜻대로 안 해준다는 것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솟아오르는 아들, 그 둘은 합의점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평행선만 달리며 지 입장만 고수한다.
26일 월요일 아침.
아직 몸에 가래가 그르릉 거리는 상황에서 출근 준비를 한다. 대회 준비하는 동안 정신없이 사느라 나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데 여유가 생기니 쓸데없는 잡념과 무기력이 솟는다. 이건 또 내적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반찬으로 준 미니돈가스에 소스가 안 뿌려져 있었나 보다.
"돈가스 소스"
언제나 단어 수준의 말만 내뱉는 아들인데 그냥 넘어가고 냉장고에 한 발 다가서서 소스 꺼내고 고이 뿌려주는 수고만 좀 하면 되는데. 그게 무슨 억만금이 드는 일도 아닌데.
"그 정도는 네가 좀 알아서 해. 그리고 ~~~"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들한테는 또 견디기 힘든 잔소리겠지.
결국 충돌.
출근해서 문자 한 통을 보낸다.
'엄마가 화낸 건 미안하다. 돈가스 소스 정도는 네가 챙겨라.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면 답을 해라. 무시하지 말고. 그러면 나도 니 무시할 수밖에 없다.'
이것밖에 안 되는 내 인성.
아들이 뭘 물어도 입 다물고 무시하는 게 참기 힘들었었다.
예상치 않은 답이 날아온다. 참기 힘든 욕. 언제 들어도 욕은 견디기 힘들다. 상담도 수도 없이 받았으니... 상담사들은 말한다. 그건 딱히 엄마를 욕한 다기보다는 그냥 욕이다. 표현이 짧은 아이가 그냥 지 감정을 표출하는 거다라고.
근데요. 상담사님. 겪어보세요. 그 욕들이 적응이 되는지.
종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런 소리밖에 못 듣는 게 엄마라고. 인생 어떻게 산 거니?
계속 그 몇 글자에 꽂혀서 진정이 안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것도 내공이라고 이런 것들에 좌우돼서 아이들에게까지 감정이 표출되진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뿐.
답답한 마음에 동기를 붙들고 그냥 대충 핵심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결론은 같다.
"그냥 밥 맛있게 잘 차려줘. 잘 지내고."
당연한 말이다. 나는 엄마니까. 우리 아들은 미성년이니까.
종일 가라앉지 않는 마음. 결국 화살은 멀리 한 달째 출장 가 있는 남편에게. 그리고 저녁에 또 충돌.
밥을 해줬지만 아침에 손도 대지 않은 햄을 넣어 볶아준 밥이라고 버리는 아드님.
오늘 자고 일어나니... 뭐 내가 종일 부글거린다고 상황이 달라지나? 우리 아들은 언제나 저럴 것이고. 나는 어쨌든 살아야 되니 감정을 가라앉히고 일도 해야 되고 일상을 살아나가야 되니까.
죽지 않는 한, 죽을 용기도 없는 한 아들과 살아야 되고, 지지고 볶아야 되고, 또 같은 상황은 수도 없이 반복될 것이고. 지혜롭지 못한 나는 또 똑같은 상황을 되풀이할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지혜롭지 못한 나를 빨리 알아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소모전이 아무 득이 안된다는 걸 예전보단 빨리 깨닫는다는 것. 결국 또 하나의 과보만 쌓았다는 것. 점점 커가는 아이에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등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기 연민... 결국 자기 연민이다. 1,2,3차 설움도 개나 줘버릴 자기 연민이다.
1차 설움- 니 아픈 거 네가 상신하는 게 맞지. 아프니까 본인 집에서 상신 안되니까 떠넘기는 사람이 잘못된 거고.
2차 설움-아파도 엄마니까 밥 차리는 게 맞고.
3차 설움-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이 있으니 어제도 네가 필요한 화장품 샀을 거고.
나만 왜 이렇게 사나도 착각일 것이고, 결국 자기 연민에 나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다.
엘렌 랭어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나 자신에 대해 속상해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취급하는 상대방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라고.
자기 연민 따위는 던져버려. 미성숙한 인간 같으니라고. 80 되어도 이러고 있을 거 같다는 거지.
원인이 뭐가 됐든(과거는 생각 안 하기로 했으니까) 저렇게 커 버린 아들이 안타까운 거지. 그 원인의 중심에 내가 있을 테니까.